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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미사가 끝나는 시간에 마주친 승호가 머쓱하게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한 여자를 가리킨다. '여자 친구' 승호 바로 앞의 여자는 머리 전체를 노랗게 염색을 한 모습인데, 그 여자일까 내심 걱정을 했다. 그 쪽이 아니라, 저 쪽. 발 등을 붕대로 칭칭 감은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선 여..
형광등 불빛 같은 블루문이 두둥실 떠올랐다. 뉴스에서 3년에 한번, 한달에 두번 보름달이 뜰거라 했던 날이 오늘이었네! 여느 날이었다면 모른체 했을 하늘이 올려다 보아진 것은 한 쪽 마음이 이상스럽게 허한 탓이기도했을 것이야. 모두가 떠난 빈 자리에 선 느낌. 언제나 여행은 남은 ..
내가 그에게 배운 것 중 무엇보다 잘 한 일은 결정을 두고 주저하지 않는 과감함이었다. 그리고 절대 뒤 돌아 보지 않기. 잠재되어진 힘으로 가능했던지, 사는 일에도 반복된 학습의 영향을 받는 것인지....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마흔 중반의 마리아가 내게 그런 적이 있었다. "형님, ..
내친 김에 하루 남은 달력을 뜯어 냈다. 남은 숫자, 아쉬우려나? 7월도 막바지다. 흘러가는 세월이야 나만 잘 알고 있으면 되는게지. 4월에 새로 구입한 쏘렌토의 엔진오일이 순식간에 10085km를 가리키고 있었다. 엊그제 9천 즈음이었던 것 같았는데.... 기아자동차 서비스센터 여직원이 5천 ..
일찍 집으로 가려다 마침 다빈의 학원 끝마칠 시간이 가깝길래 그 곳으로 갔다. 어쩌면 자전거를 갖고 갔을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매번 시간에 쫓기더니, 모처럼 느긋한 마음이 되어 보자 했는데 오후 5시까지 40여분의 잉여 시간을 보낼 곳이 영 마뜩잖았다. 차 안에서 껍질을 대충 벗겼..
우체국에 들러 제일 빠르게 받아 볼 수 있는 서류를 보내면서 "혹시 오늘 안에 도착하게 등기보다 빠른 속달우편은 없나요? " 물었다. 예전에 서울에서 보내 온 것을 한번 받은 기억이 있었는데 이 곳에선 안 된단다. 그 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직접 가면 더 빠를 테지만 게으름일까? ..
눅눅하게 젖은 만원권 네 장과 오만원권 한 장에서 살아내느라 애쓴 노고가 한 눈에 보였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다녀간 분에게 자재값은 냉동실에 넣어 두고 가면 된다고 했던 것이 내내 걸렸다. 사람 없는 사무실에 돈을 두어야 할 곳이 처음엔 서랍도 아니고, 금고도 아닌 왠 냉동실..
라자로 마을 성당 입구에 있는 물레방아도 맘껏 물을 먹은 모양, 멈추어 섰던 물레방아가 출렁이며 힘차게 돌았다. 이틀동안 충분했던 비의 영향으로.... 미사 드리러 갈 때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장 차림이어야 한다길래 겉옷 하나를 덧입었더니 더울 때는 꼭 그렇게 입지 않아도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