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때문에 병원으로, 이리 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나에게 일부러 한가한 틈을 준 것인가. 돈벌이에 목숨 걸지 말라고 아이를 앞세우기라도 한 것처럼 바쁜 일상이 뚝 멈춰 버렸다. 애써 태연한 척 해 보지만 속으론 조금씩 불안함이 스멀스멀... 아이는 자신과의 시간을 많이 갖는 데 ..
어머님이 기른 연하디 연한 상추의 맛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큰 얘가 챙겨온 할머니의 상추를 나는 염치도 좋게 맨 밥에 고추장을 얹어 한 웅큼 우적우적 입 안으로 구겨 넣었다. 염려할 것도 없이 길들여진 익숙한 맛을 애써 거부한 들 투정에 불과할 것이지만 마음과 따..
아가씨가 월남쌈과 육개장을 한 냄비 해 가지고 왔다. 지난 주 세인이가 입원하는 바람에 병원에서 본 이후 일 주일만에..... 긴 공백을 간신히 깨고 서로 간 진심을 확인했다 해도 부담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로 인해 엮어지는 사건 말고 유대감을 형성하기가 이토록 힘들수가. ..
스마트폰이라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이 있음에도 사진을 일부러 그 속에 담아두려 애쓰지 않는 이유가 이 다음을 기약하며 추억에 얽매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기 아쉬워서라면 대답이 될까? 그럴 수도 있었겠다. 우리에겐 같은 듯 다르게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
낯선 것에 대한 적응력이 이처럼 탁월할 수가? 벼랑 끝에 몰리면 살기 위한 초능력이 발휘되는 것처럼 그렇게 뒷걸음질 칠 수 없을 능력이 나를 늘 살려내곤 한다. 궁지에 몰려 낙담하기 보다 천천히 이제껏 살아온 우리의 내력에 나를 대입해 보곤 하는 것이지. 그러고 나면 언제나처럼 ..
바쁘게 일 처리를 하느라 지쳐있는 것을 오랜만에 만난 어떤 이는 "볼 때마다 얼굴이 안 좋은데 빨리 좋아져야지요." 뜬금없이 그렇게 말을 했다. 의아스럽게 쳐다보는 내가 이상했는지 더 심각하게 안쓰러운 얼굴이다. 생각해 보니 자신의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니 상대가 그리 보이는..
접시꽃 당신 _ (도종환 )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
아이 셋이서 소통하던 카카오톡에 엄마까지 합세해 이젠 삼각이 아니라 사각이 되었다. 아이들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갈팡질팡 속앓이더니 카카오톡 하나로 그들은 다시 나를 여왕자리에 앉혀 준 셈이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미흡하나마 엄마의 애쓴 흔적을 가상히 여겨 반갑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