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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일곱의 경비아저씨는 우리 사무실에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내 일처럼 바쁘게 안으로, 안으로 물건을 밀어넣어준다. 할 사람 있으니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해도 듣지 않은채..... 퇴근길에 경비아저씨께 만원 한 장을 꺼내 "막걸리라도 한 잔 사 드세요." 그렇게 고..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맑음 한 언니는 남편의 칠순잔치 걱정을 하고 있고, 한 언니는 일천만원짜리 보증금을 들고 월세거리를 찾아 다니고, 그들보다 한참 젊은 동생인 나는 어느 쪽 귀를 열고 맞장구를 칠까? 그들의 푸념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큰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비 새벽같이 수련이를 야탑 버스터미널에 내려주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길, 비가 내린다. 벌써부터 칠흑같이 어두운 아침은 종잡을 수 없을 하루를 긴장시킨다. 수련이는 기어코 포항으로, 부산으로 해서 만날 친구들을 다 만나고 오겠다며 설레임으로 고속버스에 ..
오늘은 그곳의 계단을 하나 하나 세어 보기로 했다. 하나, 둘, 일백사십일 계단..... 슬픔에 지쳐 이제 한가하기까지 한건가, 하릴없이 이 짓을 하고 있다. 그 계단을 다 올라야 나는 비로소 울음을 울어낼 것이고, 어색한 미망인 행세 또한 아주 떳떳하게 가슴 속에 맺혀있는 미련까지 덜어..
2013년 1월 20일 일요일 맑음 수련이는 대전에 있는 학교의 합격통지를 받아들고 단단히 마음준비를 하고 있는데, 엄마인 나는 속으로 얼마나 애가 탔는지 울뻔 했다는 아이의 절실함도 외면한채 "먼 곳으로 꼭 가야겠냐"고 물었다. 제 길을 알아서 찾아낸 아이의 수고를 내 외로움 따위에 ..
아름 아줌마는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들의 전화번호를 내게로 착신시켜 놓았다며 인천공항 대기실에서 전화를 해왔다. 늦은 시간이 되어도 연락이 없길래 부탁하자니 불편했을까 싶어 내심 신경이 쓰였는데 내 소심함이 안도의 숨을 쉰다. 나는 그들에게서 내 남편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
이른 아침, 중2 막내가 느닷없이 퉁명스런 말투로 내게 묻는다. "엄마, 내 통장 어딨어요?" - 통장이라니? 무슨 통장.... "어릴 때부터 세뱃돈 받은 거 제가 드렸잖아요." - 왜 돈이 필요해서? 그렇다면 엄마가 줄께. "아니요. 제 돈을 꺼내서 주라는 거지요." - 다빈아, 세뱃돈 받은 게 얼마나 ..
신림동 언니는 여전히 "내게 돈이 많으면 아들 차도 새로 사 주고 싶고, 없는 동생 제대로 된 세라도 얻어줘서 명의는 내 이름으로 해놓고 돌봐주고도 싶고..... 그런데 집만 덩그렇지 뭐가 있어야지." - 언니!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주고 나서 바로 잊어버려야지, 그것을 관리하려 들면 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