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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함을 뒤로 하고 봄비는 차분하게도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한바탕 세인과 언쟁을 벌이고 집을 나서자 마자 마음이 아플 이 후회는 뭐하러 하는지... 매번 상극인 것처럼 세인과 나는 조심스럽다. 행여나 어긋나게 말하게 될까 입을 다물게 되면서 애꿎은 TV 드라마를 섭렵하게 되었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칠천원짜리 실내화 한 켤레를 사 갖고 들어왔다. 월요일이라 학원을 안 가는 중3 막내, 바닥이 다 닳았어도 정이 너무 들어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 실내화에 물이 들어 올 것 같았다나? 손수 그려 넣은 자신의 그림을 내어버리기 싫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을테고.....
"엄마 냉동실에 김치전 있는데 먹어봐." - 어디서 난 건데... "그 오빠네 엄마가 유일하게 잘 만드는 것인데 꼭 주고 싶었대." 세인이 소중한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말하길래 냉동실 문을 열었다. 한 입 크기의 전 서너개가 비닐봉지에 싸여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아한 것은 고작 김치..
개념없이 움직이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뻔뻔함을 도저히 더는 봐줄 수 없어 바른 소리 한 마디 했더니 "왜 나에게 화를 내세요?" 일을 그르쳐 사무실에 손해를 끼쳐놓고는 적반하장으로 들어오자 마자 화를 낸다. 나보다 서너 살쯤 더 나이 든 남자의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까지 바라진 ..
몰랐다면 왜 몰랐는지를 알고나 가야 한다. 귀찮은 김에 내쳐 가지 말고, 그 귀찮은 무심함이 전염되어 가뜩이나 불안한 무지랭이로 굳혀지기 전에..... 그래서 나는 늘 바쁘다. 그 없이도 보란듯이 자리를 지켜내느라, 누가 뭐라나 게을러 퍼져있다 한들 자동차의 엑셀을 세게 밟았다, 약..
고개 하나 넘어 잠시 평지에서 숨을 돌리다. 숨돌리는 일은 언제나 잠시, 다음 고개너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늘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는 설레임으로 아침을 맞았다. 두 눈이 빡빡한게 모래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거북스러웠다. 피곤에 젖어들면 이런 모습일 것을 익히 ..
새벽 여섯시 반에 출근했다가 저녁 아홉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으니 나는 꼬박 열 다섯시간을 밖에서 보낸 셈이다. 그럼에도 열시에 하는 수목드라마 하나를 보자고 30분동안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 마음이 바쁘다.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이것이면 어떻고, 저것이면 어떤가. 조인성도 ..
어릴 적 한 동네 살던 한 살 어린 후배의 전화 "언니, 지금 바빠? 나 엄마 때문에 죽겠다. 왜 이리 정이 떨어지는지 모르겠어. 며칠 전에 엄마 생신이었는데 친정 가기 너무 싫어서 그냥 모른체 했거든. 그래도 엄마인지라 마음에 걸려 조금 아까 전화를 했더니 '내, 죽기 전에 기어코 너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