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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건조대에 널린 양말 중에서 어느 것을 고를까? 기웃기웃, 다행히 바짝 마른 검은색 두 짝을 골라 신을 때까지도 기억은 잠시 며칠 전에서 멈추었던 게 분명해. 내가 널었던 그 빨래가 아직도 안 말랐나? 그 멍청한 생각에 갸우뚱했으니.... 세탁기 안에 텅 비어진 공간을 들여다 보기 ..
수리산에서 바라다 보고 밟았던 눈의 촉감은 지금 생각으로도 분명 환상이었다. 올해를 지나며 완결판을 제대로 찍어낸, 감동.... 서툰 걸음으로 눈밭을 두두두둥 미끄러내려간 그 짜릿함은 앞으로 남겨 진 나의 과제쯤이야 사방으로 흩날린 눈꽃 속에 날려 버려도 좋을, 상쾌한 기분이 ..
저녁 밥상을 다 차렸는데, 갑자기 짜파게티가 먹고 싶다는 중학생 막내를 위해 기꺼이 슈퍼에 라면을 사러 가는 아빠, 큰 냄비에다 펄펄 끓인 물에 네 봉지 전부를 풍덩.... 물 조절을 잘 못해서 팍팍하게 엉겨 붙은 짜파게티가 되어 버렸지만 맛나게,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도 군침을 삼키..
아주 때로는, 무심한 듯 바라보았다가 그것이 섭섭하다면 다시 힘껏 당겼다가 사는 일 또한 밀고 당기는 반복일 것을 매번 다지고 다져 보아도 늘 제자리에서 맴맴 돌기를..... 그 조절에 실패하면 상처를 받는 것이고, 우연히 성공을 하면 더 이상 시련은 끝난듯 착각에 사로 잡힐 것이고,..
"개업 7주년 기념 세일"이 큼지막하게 붙은 횟집은 7년 전 나와 같은 날 회사를 그만 둔 동료의 일터다. 그럼에도 꾸준히 여기까지 잘 견뎌내고 있는 걸 보면 적성이 맞기도 했나 보다. 작년, 재작년에는 성탄절이라고 손님이 없어 한산했는데, 이번엔 예상치 않게 밀려 든 손님 때문에 정..
사무실에 우두커니 네 시까지 버티고 있다가, 갈 곳을 찾았다. 성탄절이라는데, 나는 성당에도 가지 않았고, 어떤 식의 기도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무덤덤하게 빨간색의 25자로 새겨진 글자의 의미를 우두커니 바라만 볼 뿐.... 큰 아이가 할머니, 고모와 함께 광주 목현동 오리고기를 먹으..
혼자서만 하는 노력은 어쩐지 힘이 없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날, 바랬던 일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 날, 덕분에 하룻동안 힘이 솟아났던 것으로 대체하면 나아지려나? 사람이 하는 일이란 천국과 지옥을 수도 없이 넘나들며 깨달음의 이치를 확인하는 일. 그것 말고는 달리 ..
열일곱 살 된 남자 아이는 왜 그래야 했을까? 새벽같이 연락을 받았지만 침울한 감정, 일찍부터 간직하며 칙칙하게 휘장 친 어둠으로 하루를 몰고 가고 싶지 않았다. 사노라니 행복이건, 불행이건 적절하게 분배하는 능력이 내게 생기고 말았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은 이따가 인천의 어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