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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경복궁"이라 이름 붙여진 한정식 집에 다섯 부부가 모였다. 얼마 전 딸을 출가시켰고, 집도 새로 지은 감사의 보답으로 아름이네가 통 크게 한 턱 쏜다 했다. 평소, 부부끼리 짝을 이뤄 함께 앉아 식사하는 분위기였다면 뜨악할 수도 있을 터인데 늘 남자들, 여자들 따로 자리..
크림색의 화장대가 세인이의 방에 얌전히 놓여졌다. 잡힐 손 없이 허전한 자신의 방에다 오렌지색의 암막커텐도 설치하고, 모처럼 안락함의 향기에 취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새벽부터 긴 꼬리가 달린 원숭이 복장의 옷을 입고 왔다 갔다 하는 막내는 체육대..
몸이 떨어져 있다 해서 반드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 우리 큰 아이가, 엄마인 나는 보다 넓은 가슴이 되지 못해서 내 눈에서 멀어지면 점점 더 멀어질까봐 두려운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가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은 그까짓 눈에 안 보이는 슬픔이야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모..
핸들 왼쪽 뒤에 LPG 버튼을 괜히 눌렀다. 엊그제 퇴근 시간에 시동이 안 걸려 자동차보험회사 긴급출동을 불러 무언가 잘못 눌려진 것이 있나 보다, 그래도 불안하면 카센타 한번 가서 점검받아 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을 걸 그랬나? 어제 퇴근 시간에 다시 시동이 안 걸렸다. 이것 저것 ..
매년 돌아오는 어버이날이지만 매번 너무 어색해요. 손편지 쓰는 것도, 내 진심 담아서 전하는 것이 몇 번을 해도 낯설어요. 원래 애정 표현이 없고 그것에 익숙하지 못한 셋째 다빈이! 편지 하나 써 내립니다. 일단 얼굴 보고 민망해서 하지 못하는 말들 먼저 써 볼께요. 사랑해요. 존경해..
언제나 보고 싶은 아빠! 항상 미안하기만 했던 막내 귀염둥이 다빈이예요. 생각치 못하게 너무 이른, 일찍 내 곁을 떠나셨네요. 아직도 저한테 장난치고 호탕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아른아른해요. 조금만 제 곁에 있어주셨더라면 더 잘난 딸의 모습 보실 수 있으셨을텐데.... 그래도 보셨죠..
남편이 떠난 이후로 6년 전, 86세로 떠나신 엄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못 견딜만큼 고독이 밀려와도 하소연 하자고 엄마를 부르며 그리워 한 일도 없었던 것 같다. 위로 언니가 여섯이었고, 오빠도 하나 있어 나의 엄마는 늘 늙어 있는 모습이었고, 나까지 기대어..
둘째가 대전으로 돌아갔다. 원래의 집이 이 곳이건만, 그곳이 자신의 고향인양 그렇게 머물 곳으로 돌아갔다. 전날 치열하게 쌈박질하며 서로를 못 마땅해 하던 얼굴을 뒤로 하고 터미널에서 언니와 동생이 손을 흔든다. 스무살이 넘게 큰 것들이 철없는 모습으로 낄낄거리기도 한다.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