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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는 곳이 아닌데서, 등본 한 통을 떼러 갔다가....
무거운 가방도 걸리적 거리고,
지갑도 성가시고 해서 만원짜리 한 장과 운전면허증 하나만 달랑 챙겨
분명히 주머니에 잘 넣었었다.
원래는 가방 안에다 막무가내로 가득 채워 다니는 성질임에
안 하던 짓 한 것은 분명하다.
오늘 이 홀가분함에 대해.
밝은 햇볕도 쬐고 걷는 운동도 할 겸 늦은 오후,
모처럼 가벼운 걸음이었는데
동사무소 민원 창구 앞에서 "신분증이요?" 하는 말에
내어 놓은 카드는 다름 아닌, 은행 보안카드! 이게 왠 일?
이렇게 정신이 없을 데가.....
귀찮더라도 1.6km 거리를 되돌아 갔다 와야 되게 생겼다.
야무지게 챙긴다고 했었는데.
습관에서 이리 비껴 나가면 꼭 사단이 나는가 보았다.
기웃기웃, 한낮의 바깥 바람은 역시 신선하다.
가끔씩 이렇게 하늘도 봐 주어야지.
거울 볼 줄을 아나? 먼 데를 볼 줄 아나?
내 있는 이 곳에만 전전긍긍......
이왕 나온 걸음, 화장품 매장에 들러
쓰던 것보다 조금 비싼 미스트 하나를 골라 달랬다.
매장 여직원은 밑도 끝도 없이 가장 비싼 것을 선뜻 내밀며
한정품이라고 살짝 유혹을 한다.
"아니요, 됐어요. 그 중간 것으로..."
이젠 화장품 이름도 다 까 먹었다. 요즘 여자들은 무엇을 쓰는지 까마득한데,
여자는 내게 들으라고 자꾸 설명을 쉬지 않았다. 아는 것도 많다.
당연한 일이지, 자신의 일이니 그처럼 모르면 어찌 자리를 지키나?
얘들이 자기들 것 살 때마다, 때마다 다른 화장품으로, 참 나는 까다롭지도 않다.
기능성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고.....
"원래 쓰던 화장품은요?"
- 글쎄요!
왁자한 도심 속에 고립된 모습으로 이 걸음도 우연히다.
작정하고 들른 것이 아니라, 구름 위를 헤매이다 떨구어진 낯선 공간.
능숙한 여자는 재빨리 포기하고
적절히 상대 손님에게 불편하지 않을 분위기를 연출했다.
"건성 피부인가요? 지성 피부인가요?"
참으로 식상한 질문! 그렇지?
- 난 잘 사 보지 않아 모르겠으니, 미스트 하나, 화운데이션 하나 알아서 주세요.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일부러 알은체 하는 것 또한 이상하지 않나?
정말 모르는 것이 맞으니까....
요즘 들어 거울을 들여다 보니, 잔 주름이 꽤 많긴 했다.
마냥 그 젊음으로 비껴갈 세월은 없다.
맨 얼굴이 미안해서 덧칠도 하지만,
소용없을 민망함 앞에 잠깐 우울해지기도....
그까짓 것이라 장담을 했어도, 또 아닌 내가 여자라는군.
그러게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잘 꾸미며 다니는 일도 능력이고 재주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체험한 아픔의 잔상으로 걸음 하나 조차 의미를 갖는다.
아까 걸음이 1.6km, 지금 다시 걸음이 1.6km.
장애 요인 없이 내딛을 수 있는 내 걸음에 찬사를......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소리 없이 스러져 갈 내 젊음이 안타까운 오후,
낙엽지는 가을도 아니건만, 유난한 봄볕은 더 슬플 수가 있다.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메모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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