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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신촌로터리에서.....
    나의 글 2013. 12. 26. 10:43

    사무실에 우두커니 네 시까지 버티고 있다가,  갈 곳을 찾았다.

    성탄절이라는데,  나는 성당에도 가지 않았고, 어떤 식의 기도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무덤덤하게 빨간색의 25자로 새겨진 글자의 의미를 우두커니 바라만 볼 뿐....

     

    큰 아이가 할머니, 고모와 함께 광주 목현동 오리고기를 먹으러 간다 했다.

    특별한 날인 것을 그제사 알아챘다.

    연례 행사였던 그 모임에 둘째는 대전으로 가서 빠졌고,

    막내는 신촌으로 달려가서 빠졌고, 

    나는 이 곳을 지키느라?   

    아니 그 전부터 남편과 나는 바쁘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핑계가 용납되어져

    늘 제외시켜 두었었다.

     

    두 아이가 빠진 그 식사 자리는 참 재미 없을 것 같았다.

    셋 다 진지한 성향의 사람들.

     

    신촌에 가면 막내를 만날 수 있으려나? 

    다섯시 라고 했던가?

    무작정 홍대 앞 긱 하우스라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알고 보니 공연장 대관하는 곳이었다. 

    원하는 힙합 그룹이나,  밴드 들이 갹출해서 모은 돈으로

    그 장소를 빌려  공연을 한다는....

    대충 알 것 같았다.  막내 때문에 새롭게 깨달아지는 것들도 있구나.

    제 언니들도 아직 모를 판에,

    나는 엄마라서 그렇기도 하고, 그 아이가 좋아서 그렇기도 하고....

     

    자기 순서는 고작 몇 분이라, 쑥스러우니 오지 말라는 얘기를 했던 것도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우선 이 곳을 탈출하는게 급선무다.

     

    신촌의 현대백화점, 그랜드마트, 신촌교회, 

    7년만에 마주 한 그 거리는 그럼에도 익숙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아이의 공연은 네비게이션에 의존을 하느라

    그 근처에서 이십여분을 헤매다 놓치고 말았지만

    낯선 곳에서의 만남이 중요한 것이지.

     

    "엄마, 나 지금 나왔어요?  신촌지하철 역 입구로 내려가는 중, 엄마 어딘데요?"

    - 벌써 끝났어?  아깝다.  그랜드마트 횡단보도 앞에 서 있어.  그 쪽으로 갈께."

     

    "엄마, 편하게 갈 수 있어서 좋다."

    - 데리러 오니까 좋지!

    이 말을 아마 서너 번은 했던 것 같다.  좋지!  엄마랑 만나니까 좋지!  이 말을....

     

    아이를 태우고 잠시 맛난 것을 먹이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면서,

    물어를 봤다.

    "다빈이는 어떻게 해서 이런 걸 할 생각을 한 거야?"

    - 1년 전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네이버 검색에 이다빈을 치니 "레이싱걸~ "이 나오더라구요.

      이 검색에 내 이름 석자가 번듯하게 나왔으면 좋겠어서 궁리를 했더니 남이 흔하게 하지 않는 것,

      그게 랩이었어요.  난 무척 행복해요.  아이들이 신기하게 바라봐 주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새로운 것에 몰입을 하고 나면 심장이 쿵쿵 뛰면서 기뻐요.

       인터넷으로만 계속 공유하다가 정식으로 이번이 두 번째 공연인데 이젠 그만 하기로 한다고 말했어요.

       난 고등학생이 되고,  공부는 필수라는 걸 분명하게 알거든요. 욕심이 많아서 이 것 저 것 다 해 봤어요.

       엄마 모르는 사이에, 

       어느날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하루 하루 행복하게 지내는게 우선이라는...."

     

    "하고 싶은 것 다 취미로 병행해도 괜찮아.  아쉽다."

    - 아니예요.  이젠 됐어요.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삶을 엮어나갈 줄 아는 진짜 행복에 대해서 아는 아이!

    나의 막내다.   엄마보다 훨씬 나은 생각으로 엄마를 감탄하게 만드는....

     

    아빠가 떠나고 어느날,

    아이의 책상에서 보았던 노트 속의 빼곡하게 써 놓은 글들, 

    그것이 랩으로 노래를 한 것이었구나.

     

    차근차근 자신의 미래를 이렇게 개척해 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어린얘로만 보았으니

    부끄러웠다.  참말,  어른으로서.....

    해질녘 신촌 로타리에서 아이로부터 전해진 지난 1년여의 슬픔을 깨고 나온 벅찬 희열,

    기특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
    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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