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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러운 날나의 글 2013. 10. 9. 12:58
커다란 압력밥솥의 추가 빙글빙글 한참 돌았다가 이내 멈췄다.
묵은지와 돼지등뼈가 어우러져 흐물거리며 식욕을 돋군다.
주방 겸 거실의 작은 공간에 식구 넷의 오붓한 저녁식사.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친구의 남편은 편안히 술 한잔을 하게 되었다며 소주 한 병을 챙겨 왔다.
친구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가 이내 일자가 된 찰나,
"안주가 좋아서" 능청스레 말하며 소줏병의 뚜껑을 서둘러 딴다.
친구의 핀잔은 멈출줄 몰랐지만
순식간에 소주 한 병을 비운 그는 매우 행복한 얼굴이었다.
행복하려면 저들처럼?
뜬금없는 부러움이라니.....
이것 저것 전해 줄 일이 있어 다 저녁에 잠깐 들렀다 가려던 것이
그들의 소소한 행복자리에 동석을 하고 말았다.
옛날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나고 말았는데
저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언젠가 큰 아이가 물었었다.
"엄마는 아빠의 자리를 대체할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냐고."
- 글쎄, 무엇으로 채울까? 이 악몽이 우리를 바꾸어버리지 않았다면
발칙한 바람 한번 제대로 피워볼 수 있지 않았을까?
무진장 속상한 어느 날, 언젠가 한번 쯤 만났을
첫사랑을 찾아 아빠 염장 좀 질러 보려는 생각은 한 적 있었지.
하지만 다 물거품이 되었다.
약올라 할 상대도 없이 무슨 재미로....
그 이유를 물을 수도, 따질 수도 없게 된 사람을 두고 비겁한 짓을 어떻게,
그 상대가 얄밉도록 막강했을 때에야 누릴 수 있는 호사의 기회마저 박탈되어진 마당에."
"엄마, 그렇지. 나도 그래." 큰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고 엄마나, 동생들에게 못난 줄도 모르고 떠들어 댔다.
중3 막내가 한심한 듯 쳐다 보았다. "바보들...."
그래서 한바탕 웃었던 어떤 날이 스쳐갔다.
늦은 저녁 가수 최백호가 방송을 하는 103.5를 틀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김장훈이 노래를 한다.
그렇게 좋은 날? 어서 빨리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60이 되었으면 바랬다.
친구가 웃는다. "남편이 있다고 해서 뭐 그리 행복할 것도 없어."
내게 할 수 있을 유일한 위로의 말, 그럼에도 부러운 걸......
그들의 토닥토닥 잔소리, 푸념, 지겨움, 한숨까지도 염치 없이 부러운 날이 있다.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메모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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