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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삼선교에서
    나의 글 2013. 8. 9. 09:43

    아흔이 된 엄마를 몇 년 째 찾고 싶지 않았던 후배가

    더 이상 미루면 천륜을 어기는 것 같다며 함께 가 달라고 했다.

     

    어릴 때의 원망이 불현듯 떠오르며 갑자기 엄마가 징그럽게 싫어졌었단다.

    "언니, 그런 맘 이해해?  차라리 시어머니라면 도의적인 태도라도 취할테데,

     내 엄마니까 더 함부로 하게 되는 것 같아."

     

    "종교를 가진 사람이 마음을 이렇게 쓰다간 천벌을 받겠다 싶더군.

     나의 딸들이 훗날 내게 이렇게 하면 어쩔까 겁나기도 했고...."

     

    퇴근시간이면 도로가 복잡할 테니 좀 일찍 나올수 없느냐고 채근을 하길래

    조금 앞당겨 여섯시에 나왔는데도

    분당에서 서울 삼선교까지 가는 시간은 꽤 걸렸다.

    그곳은 시집오기 전  내가 살던 고향이다.

    청담대교로 넘어갈까 하다, 하남시 방향으로 틀었던게 지체의 원인이었는지....

     

    네비게이션이 알려 주는 길의 방향엔 정석이 없다.

    내가 들어선 길에서부터 다시 원점으로 시작되곤 하지.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서는 나의 옛날 동네, 

    돈암동에서 삼선교로 이어지는 길에 익숙한 것은 이제 하나도 없다.

    벌써 20여년이 흐른 후, 괴물 같은 아파트만 꼿꼿이 자리한채로 불빛만 휘황차다.

     

    도착지 지하철역 1번 출구에서 깜박이를 켜고 기다리는데 동생이 보이질 않는다.

    어디냐고 물으니

    "언니, 이때까지 기다리다가 조금 전,  길 건너편에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지나오길래

     도망쳐 왔어.  안 보이는 곳으로....   바로 건너갈께."

     

    죄 짓고는 못 살 세상이다.

    "언니, 나 왜 이러냐?  가슴이 두근두근...."

    - 이해 할 수 있어. 

     

    큰 오빠네와 함께 살고 계시는 동생의 엄마는 성질이 괴퍅하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동생의 말에 의하면 "해 준 것도 없이 바라기만,  참 뻔뻔한 분"

    그럼에도 아흔까지 건강하게 살고 계시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분란만 일으키니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

     

    커다란 수박 하나를 샀다.

    방 2개 짜리 협소한 집에서 동생의 엄마가 설겆이를 하고 계셨다.

    "언니, 아까 본 할머니가 우리 엄마 아니었나봐.  너무 많이 늙어서 깜짝 놀랐는데,

     저렇게 정정하시네."

    그만 웃음이 나왔다.  

    노인들은 어느 순간이 되면 늙음이 멈추는 것 같았다.

    칠십이나, 팔십이나, 구분이 쉽지가 않다.

    더구나 구십이라니.....    나이를 굳이 밝히지 않으면 정말 모를 일이다.

     

    몇 년을 안 보았다는데도 어제 본 사람처럼

    "더운데 어찌 왔냐?" 이 한 마디로 불필요한 3년의 앙금은 사라졌다.

    엄마이고 딸 인 것을....

     

    오빠 부부가 들어오고, 두 조카가 들어오고  늦은 밥상이 차려졌다.

    오십 후반의 오빠와 아흔의 엄마가 티격태격 말 다툼을 한다.

    밥통에서 밥을 푸다가,  아주 별것 아닌 것으로....

    그 마저도 부럽다.

    구질구질하게 산다고 무시하는 동생의 표현은 옳지 않다 할만큼

     

    어디서 본듯하게  익숙한 풍경이 내 앞에서 재현되고 있다.

    우리 집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들과 엄마의 다툼까지도...

    타이머신을 타고 잠깐 그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직 어떤 것도 깨어지지 않아 지금의 고달픔이 지긋지긋하다는 푸념조차

    난 부러울 뿐인데, 동생의 오빠나 올케는 귀찮은 엄마 때문에 늘 골치를 앓고 있단다.

     

    이렇게 동생이 출연하고자 했던 영화 한 편에

    톡톡히 조연 노릇을 해준 격이 된 나는 다시 빈 마음이 되어

    왔던 길을 돌아 갈 시간....

     

    무중력 상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 모호한 감정을 애써 어떻게 추스려야 하는지,

    갑자기 내게 남편이 있었던가 의문에 싸였다.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
    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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