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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이렇게 없을까? 나란 사람은.....
그래서 가끔 슬프기도 해. 남들 해 주는 건 아낌없이 하면서도."
막내의 시험기간 내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하루는 순대국밥, 또 하루는 날치알밥,
어제는 조박사 짜장면 집에서 중간 맛 짬뽕으로
나름 맛집 여행 중이다.
오늘은 또 무엇을 먹으며 다빈의 이야기를 들어줄까?
공부? 시험 점수 잘 나오지 않으면 어때? 괜찮아.
다빈이는 엄마가 재촉하고, 잔소리 좀 했으면 좋겠니?
전혀 그러고 싶지 않다.
그저 편안하게, 편하게....
엄마의 어색한 속마음을 잠자코 듣기만 하는 다빈에게
이런 엄마가 무심해 보여도, 진심인 것을...
욕심이 없는 건지, 모자라서 그런 건지,
차마 부질없다는 생각까지 입 밖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냥 살아가는 과정에 드는 비용이려니....
이 모든 애씀이.
승호가 아버지의 환갑 선물로 사 온 스웨터를
무겁기도 하고 아무래도 잘 입지 않을 것 같다길래
다른 걸로 바꿔 오마고 아침 나오는 길 챙겨 나왔다.
'이젠 가벼운 옷이 좋더라고...'
자꾸만 그 소리가 귀에서 웅웅거렸다.
처음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다빈아 오늘은 ak백화점으로 갈까?"
- 엄마, 거기에 식당이 있어요? "
"물론이지. 지하 식품관 있잖아."
- 아, 그렇구나.
"아저씨 옷 바꿀 것이 있으니, 먼저 먹고 바꿀까? 바꾸고 내려가서 먹을까?"
- 옷 부터 바꾸고 내려가요.
두루 두루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걸 보면 아직 어리긴 하다.
예전으로 치면 열 여덟살 나이에 시집도 갔다고 다 컸다 해도.
그건 우리 식의 억지다.
스웨터 가격에 맞추자면 턱없이 부족한
네이비 색 멋진 다운 외투가 눈에 들어왔다.
신상품이란다.
길게 고르지도 않고, 105 싸이즈로 ....
그 중 무난한 것이 명품인 것을.
그러고 보니 이런 류의 옷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전에도 그렇고.
"엄마, 이 옷 엄청 가볍다."
도대체 얼마짜리냐고 그가 여러 번 되물었지만,
그냥 내 수준에 좀 비싼 거라고만 답을 하고 지켜봤더니
딱 맘에 드는 옷이어서 기분이 너무 좋단다.
'그런데 아까워서 어떻게 입지?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는지...'
하나를 받으면 기어코 둘을 주고서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그 마음이 나와 같아서 ....
주고 나서는 되도록 빨리 잊고자 하는 사람,
그 또한 나와 비슷해서
진심으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행복하다.
그가 내게 배려한
그동안의 애씀에 비하자면 턱없이 모자라지만
내 마음의 자신감이 되살아 난 일은 놀라움이다.
아깝지 않게 된 것에........
진심이 통하기까지의 여정은 무수한 시간과
여닫는 마음의 갈등을 겪어낸 이후에야 가능한 것들.
그래서 쉬 얻어지는 것에 가치가 없다는지도 모른다.
나로 인하여 좋아하는 것을 보는 일이 이렇게 감동스러울 수가 또 있을까?
가진 것이 많은 것보다, 아깝지 않은 진심이 흘러나왔을 때의 벅찬 감정.
그래서 그는 모두에게 끊임없이 주고 또 주었던가 싶었다.
이런 마음이 되고 보니....
누구에겐가 반드시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남는 것처럼
살아내는 일은 참으로 값진 것이다.
2015년 1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