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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선 발걸음이 이대로 끝이 날 줄.... 그러한 때가 있었다.
내 안에 사로잡힌 피해 의식, 못난 생각이 가득찼을 때.
마음 속 매일의 전쟁이 긴 휴전을 겪으면서
날 선 마음도 녹이 슬어가고
이해 못할 것 또한 없을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충분히 삶의 바닥을 치고, 또 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본디의 나를 인정해 주는 세상인 것을,
그럼에도 잃어버린 시간들이 그리 길지 않음은 다행이다.
윤정(빅토리아)의 세례식이 있는 날,
꽃 한 다발을 부탁하는데, 망설임이 전혀.....
기댈 곳 없이 저마다 혼자가 되어진 슬픔이 녹아내리고
텅 빈 공허를 깨달은 우리는
이제 모두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랜동안 한 집에 살면서
얄미운 시누이, 시집도 안 가고 골치 아픈 시누이란 닉네임으로
내 시집살이의 대명사로 불렸던 그녀와 나도,
이젠 여자 대 여자로 대할 수 있게 돼 편해졌나 보다.
세 살이나 위면서도 여전히 꼬박 꼬박 언니란 호칭을.....
사실 꽃다발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가씨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싶었다.
어머님 옷을 사 드리니, 아이들이 그랬다.
"엄마, 고모도 엄청 그런 거 받고 싶어 해.
지난 번에 큰 고모 칠순 때 축의금 전했더니, 내 꺼는? 나도 좀 주지 그랬다니까."
혼자서 잘난 사람은 말을 안 해 그렇지,
외로움이 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최근에사 들었다.
"그러니까, 엄마! 고모도 옷 하나 사 줘."
지들 고모라고 챙기기는...
노란 장미꽃 한 다발을 포장하는 밑으로
슬그머니 봉투를 건넸더니, 극구 사양을 한다.
왜 돈을 주냐고.
백마디 말이 무슨 소용일텐가.
무언의 표시, 그 안에 안쓰러움과 이해가 모두 포함된 것으로.
한가할 때 짜두었다며 목도리 세 개를 건넨다.
"하나는 언니 것, 하나는 그 아들 것, 하나는 그 분 것...."
아픔을 딛고 일어선 우리는 그 때보다 모두 씩씩해졌다.
맘대로 분노해서 상처 주는 일 또한 삼갈 줄도 알고....
2015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