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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떤 날....나의 글 2013. 10. 7. 15:53
지난 여름 완도 여행을 다녀온 남편 친구 부부가 선물로 준 미역을 어디에 두었더라!.
지난 번 불려서 국을 끓였다가 죽탕이 되어 버린 미역이라고,
아이들이 질색을 하였었는데.....
원래 질 좋은 미역은 그런 것이라 설명을 해 두어도 알 턱이 없는 아이들은
엄마가 미역국을 잘못 끓였을 거라며 의심을 좀체 거두어 주질 않았다.
엄마의 음식에서 이 미역국마저 탈락해 버리면 그 나마 몇 가지 줏어들 것도 없건만,
할머니 손맛에 길들여진 아이들 입맛은 그 곳에서 가져온
바닥을 보인 열무김치국물 조차 아까워 버릴 줄 모르고 안절부절,
엄마를 속타게 한다.
눈치 못 채게 살짝 들여놓는 조심스러움을 알은체 할 수 없으니 부러 딴 곳을 보곤 하는....
서로에게 강요할 수 없을 부분에 대해서만은 큰 얘와 나는 영원한 이방인.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큰 아이에게서 엄마에 대한 반감이 큰 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말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시금치를 다듬어 큰 언니가 보내온 참기름과 깨소금을 버무려 나물 한 가지를 푸르게 담아 보았다.
개운한 미역이 아니면 어떤가? 다시 친구가 준 미역을 불려 미역국 반 솥을 끓였다.
먹을 사람 없으니 조금만 끓여내자.
그 곳엔? 오늘은 이상하게 그쪽으로 발 길을 두고 싶지 않아졌다.
이렇게 의리도, 감정도 무심한 세월에 흘려 보내지는 것인지....
애달픔이 돌아 앉았다.
바쁜 아이들은 우리처럼 특별한 날에 대한 기억에 예민하지 못하다.
일부러 부추길 필요까지도 없었다.
너무 조용한 저녁,
그럼으로 주방에서의 이 어설픈 잔치의 흉내는 부끄러움을 들키지 않아도 좋으리니.....
자정이 다 되도록 누구도 오지 않았다.
깨끗한 거실, 방들이 너무 넓다.
누굴 초대라도 한 사람처럼 나는 이렇듯 사람을 기다렸다.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장황하게 리더십을 자랑할 만큼,
맷집 좋던 목소리는 자꾸 안으로 안으로 잦아들어
이젠 그 소리의 색깔 조차 분간이 어려워졌다.
미역국에다 밥을 하나 가득 말았다.
시금치나물 한 가지와 미역국만으로 만찬을 마쳤다.
너무 조촐했나? 아니, 이 정도면 훌륭하지.
떠난 그 사람만 가엾은 것이 아니고,
남아 있어도 이렇게 고독한 나, 피장파장이다.
억울해 말아라.
천 개의 바람이 되었다고 믿어버린 순간부터 당신은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메모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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