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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가을이란다.
    나의 글 2013. 10. 2. 09:34

    진작부터 68세 둘째 언니는 이번엔 기어코 고추 20근을 자신이 사 주겠노라, 

    이제껏 네가 샀으니까, 아무 말 말고 그냥 받아.

    조용히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건만 고추는 도착도 안했는데, 

    귀가 닳도록 공치사가 길어 오래된 지난 일 같다.  예행연습 기간이 워낙 길어져서....

     

    고추 파는 곳이 나 모르는 곳도 아니고,

    정말 구하기 힘든 것을 애써 구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전라도 보성에 사는 칠순의 큰 언니네 집이라면 해마다 내가 직접 부탁을 해도

    얼마든지 직거래 할 수 있는 일인 것을

    애써 나 위한다는 통에 따로 부탁할 길까지 막아 버리니,  골치가 아프다. 

     

    "너한테 항상 얻어 먹기만 해서 이번엔 언니가 꼭 사 줄거다."

     

    집집마다 둘째의 특성은 아마 다 비슷할테지.   욕심이 두드러지고, 튀어야 하고,

    그 생색이 얼마나 장황한지 마치 서울 사는 언니가 직접 농사를 지은 사람 같다.

     

    소란 가득한 고추 택배가 도착했다. 늦은 저녁이었다.

    고춧가루, 참기름, 참깨, 된장, 마늘 등 비좁은 박스를 꾸역꾸역 채우느라

    냉동실에 있었을 법한 떡국용 떡까지 큰언니의 고마운 마음이 그대로 내게 전해졌다.

     

    시골에다 전화를 넣었다.

    "언니, 택배가 왔네.  잘 먹을께.  그리고 막내에게도 나눠줄께."

    - 냅두고.  짠한 니나 묵거라.

     

    큰언니가 내게 짠하다고 했다.

     

    아무 걱정 없을 내가 그리 되어 버렸다.  인정할 건 해야지.  아무리 아니라, 괜찮다 말을 해도

    이놈의 주홍글씨는 좀체 지울 수가 없네.

     

    두살 아래 막내동생은 나와 다른 성질 때문으로 언니들에게 신용을 얻지 못해

    열외가 된지 한참,  그럼에도 나는 동생을 챙기고자

    참깨를, 고춧가루를 그리고 된장은 몽땅 그 쪽으로 챙겨 두었다.

    언니가 냅두라 했어도 이리 나눠먹으면 좋아라 할테지. 

    결국 큰언니의 마음까지도 그리 옮겨가는 것이니....

     

    주섬주섬 시골에서 온 귀한 것을 동생, 다른 언니 하나로 이리 저리 나누다 보니

    함께였을 때, 좋아라 하셨을 어머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진짜라고, 요새는 시골이라도 속는 것이 많지만 큰언니네 것은 진짜라서 좋다고....

     

    예라 모르겠다. 

    나는 되었다. 날 잡아서 어머님 다 드리고 말아야지.

    살림 욕심 많은 그 집착도 어머님의 모습인 것을,  미웁다, 성가시다, 불편하다

    그만 눈물 내자. 

     

    마주 할 아픔이 버거워 멀리 멀리 도망쳐 보려 무던히 애썼다.

    자꾸 무너져 내린다.

    절대로, 나를 위한 삶이 우선으로 절대로 방패막을 막아 두리라.

    사람들이 내게 다들 그리 말했다.

     

    다 끊고 살라고....   이제 편하게 살으라고.

     

    편한게 편하지 못하다면 살던대로 살아야 하는가?  

     

    별 수 없이 아직은 버텨 보느라 애쓰고 있지만

    다시 머물러 익숙했던 그 삶으로 돌아가게 될까나?

     

    시골에서 부쳐 온 택배상자 때문에 모가 난 마음, 자꾸 둥그렇게 닳아지고 있다.

     

    둘째 언니가 다시 전화를 했다. 

    "형부가 며칠 동안 우리 시댁에서 따 온 밤 한 상자 곧 도착할 거다.

     혼자 사흘 내내 땄단다.

     벌레 먹은 게 많을테니 큰 다라에다 펼쳐놓고 골라서 김치통에 넣어 둬라."

     

    아마도 밤이 없어질 때까지, 내년 이 맘때가 될 때까지 언니는 생색을 내리라.

    그러려니, 그 마음도 동생을 생각하는 애틋함이 묻어 있을테지.   단지 성격이 다를 뿐.

    "언니, 이 밤도 막내와 나눠 먹을께."

     

    막내가 참 좋아한다.   이따 저녁 때 갖다 준다고 하니.......

     

    이렇게 남은 우리들은 잘 살아가고 있다.  

    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지나는 말로 불쌍타 한숨 한번 쉬어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마음은 그저 흘려보내는 연습을 재촉한다.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
    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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