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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겨진 것은 바람, 고독
    나의 글 2013. 5. 4. 15:24

    찔끔찔끔 뿌려 댔던 빗방울로 자동차는 온통 얼룩배기가 되었다.
    내일 다시 비가 내린다면 그냥 둘 테지만 당분간 날씨가 좋을 거라 하니
    깨끗이 닦아 내도록 하자.
    수돗가에 갔다.
    수돗물을 세게 틀어 보았다.
    바짝 마른 걸레를 두들겨 빨아 물기 없이 꼭 짜서는
    자동차의 뒤꽁무니부터 박박 문댔다.
    아주 깨끗이 닦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오늘은 대충 하고 말아야겠다.

    할머니와 고모가 차려놓은 아빠의 제사상에다
    아이들은 절을 했다 하고, 밥도 먹었을 테고,
    열무김치 한 통과 동태전 등 이것 저것을 한 가득 챙겨서 왔다.
    어떻게 가지고 왔을까 걱정 따위는 물론 할 이유가 없지.
    고모가 아파트 앞까지 태워다 주었으므로 이 무거운 것들을
    옮겨 올 수 있었을 테니.....

    티격태격 세 명의 아이들은 잘도 의견대립을 보였다가
    전시상황을 방불케 할 어떤 사건에 맞닥뜨리면
    뒤도 돌이켜 볼 사이도 없이 꼭지점을 향해 냅다 달리기를 한다.

    큰 아이는 학교에서 그 곳으로
    둘째 아이도 대전 학교에서 바로 그 곳으로
    막내는 집에 있다 호출을 받아 부리나케 버스로

    그 중 어떤 아이도 엄마인 나에게 징징대며
    어떻게 해야 하지? 엄마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묻지도 않는다.

    어릴 때부터 지독한 자립심이 빚어낸 단단함일까?
    "너 많이 쓸쓸하고 섭섭했겠다?" 언니 중 한 사람이 안쓰러운 안부를 물었지만,
    섭섭했느냐고? 아니 진짜로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미칠 지경이었는 걸.....

    간단하게 나마 장바구니에 채워진
    깐 도라지와 시금치, 버섯, 조기 동태포, 두부 등을
    가차없이 냉동실, 냉장실로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자존심 죽이고 끼어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말 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그래도 남편의 날에...
    불편함은 더 못 견디겠는 걸 어쩌라고, 세인아빠도 아마 이 대목은 이해할 것이다.
    우리끼리는 통했었으니까.
    이제 와서 안 될 일이 되리라고 그런 기대는 쉽지 않은 것을 말이다.

    그리고 밤 아홉시가 넘은 시각에 거실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자동차 유리문을 박박 문대듯, 그보다 더 힘을 주어 세게 문질러댔다.

    아이들이 비워낸 이 공간이
    무척 넓다는 생각도 오늘은 안 들었다.
    그러고 보니 세인아빠의 부재로 인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삶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이들과 할머니, 고모의 친밀감은 변함이 없고
    세인아빠와 나는 함께 일을 하는 바람에
    한 집에 사는 가족이었어도 늘 아웃사이더였던 것처럼
    혼자서는 섞일 수 없는 묘한 이질감을 이겨내지  못하겠는 것만 빼면

    그럭저럭 살아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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