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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검지 손가락 지문 인식도 안 되고,
비밀번호 터치도 안 되고....
두어 달 전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있어
밧데리가 닳아 그런줄 알았는데,
이번엔 진짜로 현관문 도어락의 수명도 다 된 모양이다.
점심도 걸러 배도 고프고,
난감한 상태로 문 앞을 서성이는데
앞집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 앞에 손님 배웅을 하러 나왔다가
조심스레 묻는다.
"문이 안 열리냐고...."
- 네. 밧데리가 다 되었는지, 그러네요.
"그래서 열쇠로 여는 게 제일 안전해요.
기다리는동안 잠깐 몸 좀 녹이게 차나 한 잔 할래요."
- 네. 고맙습니다.
"우린 이사 들어올 때부터 수리 한 번 안 하고 그냥 살아요. 식구도 없고,
남편은 지금 아파요."
- 네.
거실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 말고
아주머니의 소리에 힐끗 쳐다보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아까 배웅했던 이들은 우리 시누이들.
위로 차 다녀가는 길..."
- 저녁시간 아니예요?
"우린 벌써 먹고 놀다가 좀 전에 나가는 거였어요."
- 네.
하긴 지금 시간이 일곱시가 다 되었으니.
"어떤 차를 좋아하시나?"
- 아무 거나요.
"그럼, 내가 좋아하는 녹차 괜찮죠?"
- 네.
머그컵 가득 뜨거운 차를 식탁 앞에 두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래된 사람처럼 술술 이야기가 나온다.
집안의 분위기가 워낙 차분한 기운이 돌아,
고해성사하듯 풀어 놓는 나의 이야기를
칠십이 훨씬 넘어 보이는 그 분은 많이 궁금했었는지 이 것 저것을 묻는다.
"앞집은 항상 조용해요. 그런데 왠 택배는 그리 많이 온대?"
- 낮에는 사람이 없어요. 강아지만 있고...
"그래, 다들 일을 하는구나."
작년 이 맘 때 집 수리 하면서 양해를 구한다고 과일과 케잌을 건넸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잠깐 어떤 이야기라도 했던가?
"원래 집이 판교라면서요."
- 네.
"아이들은? 지금은 아직 몰라도 결혼하고 나면 엄마를 이해하게 돼요.
그런데 굉장히 젊다!"
주변에 온통 연세 든 분들을 만나다가
50대의 나를 보니 상대적으로 엄청 젊게 느껴졌을게다.
어찌 나를 이만큼 알고 있는가 하면,
얼마 전까지 이 분도 성당을 다녔었다.
최근에 와서 근처 큰 교회로 옮겨 그렇지.
어느날 성당 문패가 없어지고, 교회 문패가 새로 붙은 걸 보고
한 번 믿게 된 종교도 사람의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 십분이나 있었을까?
출장 열쇠 아저씨를 불렀다는 그가 지금 어디냐고 묻는다.
바로 앞집!
녹차는 뜨거워서 겨우 한 모금 밖에 마시지 못했는데, 많이 아쉽다.
"저, 나가 볼께요. 사람이 왔네요."
제가 잠깐동안 이런 말 저런 말 많이 했는데. 괜찮죠?"
- 내 딸이 마흔 여덟이라오.
앞집 아주머니는 문을 아주 조금만 열었다.
내가 나갈 수 있는 공간만큼만....
살아 온 연륜이 있으니,
나 같으면 활짝 열고 나와 "문이 안 열려서 어쩐대요. ...."
말 참견 비슷하게 오지랖을 넓힐 터인데.
함부로 참견하지 않고, 알려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때문일테지.
사는 모양에 따라 처신하는 방법도 다르듯.
대접받은 차를 다 마시고 나왔어야 했다고 그가 말한다.
'에티켓이라고.'
밖에 사람이 기다리면 좀 기다리라면 될 것을.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왔다고 섭섭한 상황은 전혀 아니었으니.
2016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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