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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부르던 날 당신이 내게 응답하신 것처럼
그렇게 세인의 한 발짝 다가섬은 .....
종일토록 징그럽게 내렸던 비 덕분이기도 했고,
이전보다 곱게 단장되어진 초롱이의 인물 덕분이기도 했고,
그렇게 예정되어진 오늘은 내게 참으로 좋은 날이다.
빗물로 흐느적 대는 거리를,
게다가 밤중에 운전하는 일처럼 사나울 때가 또 있을까?
어제 날씨는 그랬다.
내 마음은 천국이었던 것과 반대로
송은이와 김숙이 진행하는 언니네 라디오에서
넉살 좋게 떠들고 있는 그녀들의 걸쭉한 입담으로
꽉 막힌 도로의 지루함 일부는 덜어냈지만,
무엇보다 세인이 옆 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사실은 .....
우연찮게 퇴근시간이 맞아 떨어졌고,
혼자 저녁을 먹는 것보다, 둘이 모여 먹는 게 그림이 좋아 보였다.
그 보다 빨리 가서 취업 이력서 작성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냈어도,
싫지 않은 얼굴을 감지한 나는,
기어코 따끈한 국 한 그릇 차린 집밥을 세인에게 먹이고 싶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 말고.
"엄마, 어떻게 할머니 집엘 갔어?"
- 응. 그냥. 나눠 줄 게 많아서....
세인의 마음이 환하게 풀린 봄날이 된 것은
필히 할머니와 재개된 소통 때문임이 분명했다.
제 나름 맏이로서 무언가 정리를 해야 하는 책임감이 있었을테지.
"엄마, 며칠 전 꿈에서 아빠가 나왔더라.
근사하게 꾸며진 거실 한 가운데 높은 곳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데,
그 주변의 우리는 떠들썩하니 떠들고.... 좋아 보였어."
- 좋은 곳에 있나 보다.
누구든 마음 정리 시점은 같지 않아도,
자신에게 다가 온 깨달음으로 어른이 되어지는 것 같다.
"엄마, 외투 사야 한댔지? 언제 필요해?"
- 28일.
"28일 상견례 때 입을 옷 내가 사줄께."
- 그래.
"월급 25일에 들어 오니까 그 때.... 35만원 이하만 됨."
- 가격이 문제냐. 20만원 정도로 너무 비싼 건 안 돼.
엄마 사는 것에 관대해진 마음, 세인이 고맙다.
2015년 1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