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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좋을 순 없다나의 글 2015. 10. 21. 11:54
백운호수 길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고마운 곳이다.
밀려 든 차들로 수 없이 신호를 기다리느니
늦어도 돌아가는 길을 발견했던 것인데,
기억을 더듬어 찬찬히 보니,
오래 전 풍경이었어도
수년 전 그 때의 것임은 분명했다.
상처가 된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만 떠올리자니...
지금은 긴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해 늘 아쉽지만
어려운 순간에 함께 있어 줬던 세인이,
초저녁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나눈 대화는 어떤 색깔이었을까?
인기가수 최진희가 운영하는 퓨전식당도 그 길에 있었고,
끝없이 길게만 보였던 호수도,
무섭게 흔들거렸던 마음도,
날마다 지나치는 길에선 평온함인 것을.
그 때는 특별했던 어떤 것들에서 일상이 된 호사를 잊지 않으려 한다.
"어머님, 혹시 쌀 왔던가요?"
- 네가 보낸 거냐? 어디서 이 좋은 쌀이 왔을까,
잘못 온 거려니 하고 한 쪽에 잘 두었다 주인 찾아 돌려줄 참이었는데....
이렇게 고마울 데가, 받아도 되는 거냐?
"무엇이든 나눠 먹자 주의자라서 괜찮아요."
- 마침 고모가 집에 왔는데 바꿔 줄까?
" 그러세요."
- 어떻게 된 쌀인데?
"아가씨 한테도 보내 줄까요? 주소 부르세요."
- 엄마한테만 하면 되지. 나까지. 주면야 좋지만 그래도 되나? 그리고 고맙게 잘 먹겠다고 전해 줘요.
돌고 돌아온 길에서 군더더기 없이
편안하게 진심된 위로를 보태는 이 밤이 왜 이리 푼한가?
쌀 덕분이다.
이 주소로 쌀 하나 더 보낼 수 있어요?
물론이지. 더불어 사는 거야.
이제껏 한 번도 쌀 선물은 해 본적 없는데,
흔한 것 같아도 받으면 배가 되는 이 묘한 기분이 참 좋다.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마음을 쓸 수 있는 걸까?
옛기억으로
김장철 되면 살림 욕심 많은 어머님은 좋은 쌀 사들여 쌓아 놓기를 원했었다.
아들 며느리가 몫돈 내놓기 쉽지 않은 시절이었음에도
아랑곳 없이 때 되면 소금이며, 고춧가루며, 쟁여 두고 살기를...
그 때문에 언제나 우리집은 조용할 날이 없었지.
보란듯이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어머님과,
허세란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찾을 수 없었던 우리.
적당한 허세도 필요했었는데.... 사는 재미로 치자면.
우린 정말 모르고 살았었다.
그들의 허한 자리,
이제라도 채울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2015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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