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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이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다 벗기지 않고 담근 고구마줄기 김치가 좀 질기다길래
내놓지 않고 있다가 시어질 즈음
고등어자반 밑에다 깔고 자박자박 졸였더니
참 맛있다는 얼굴이 무척 심각해 보였다는 것 밖에.
"운동을 갔더니..... 어떤 이는 딸 때문에 이사를 못 가고....
다들 딸들과는 각별하게 정이 있는듯....
오다가 생각해 보니 참 미안하더구만,
세 딸들과 오붓하게 지낼 시간을 다 빼앗아 버린 것이...."
묵묵히 듣고만 있으면서,
어떤 말로 답변을 해야 할지 몰라 밥 한 숟갈을 덥썩 물었다.
사실 나 또한 유난히 막내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가운 날이었거든.
그런데 그가 먼저 말을 한다. 어떻게 알고.
까다롭고 복잡한 여자 아이들의 심리를 잘 모르는 그로선
나의 집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너희들이 맘이 동하면 언제든지....
그건 오랜 시간을 살아낸 어른의 생각이고,
아직 세월을 이겨내지 못한 아이들은 지금의 생각이 전부인 것을
들여다 보자니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이것 저것 고마운 일로 치자면, 다 무방할테지만
제각각 아픈 마음이 치유되는 시간은 같지 않음을 조금씩 알 것 같다.
이 또한 흘러 온 시간들이 부여해 준 변화들.
그렇잖아도 학원 앞에 가서 기다려주고 싶은 날,
따뜻한 말 한마디에 부응해 설겆이를 얼른 마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늦은 시간이어도 보고 싶으면, 기어코 봐야 하는게야.
어디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막내 좀 데려다 주고 올께요."
- 얼른 가요. 맛있는 거 사주고....
어려운 일 아닌데, 스스로 높은 장벽을 둔 것은 아닌지.
그보다 달리 낼 시간이 없었다.
따로 내 일이 있고, 이 곳 일이 있고, 부수적으로 더해진 많은 일들에
시간은 쫓기듯 지나가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 바쁨은 깊은 어둠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더냐.)
망설이며 보내는 시간은 없어야지.
매 순간이 귀한 것을 안다면.
이런들 저런들 피곤한 일이 넘쳐나더라도 기꺼이 기쁨이라면
양 어깨에 날개를 달리라.
행여나 열 시가 넘을까, 속도를 냈다.
다시는 못 볼 아이도 아닌데 오늘은 참 이상했다.
두리번 거리며, 엄마를 찾는 다빈이....
"엄마, 왜 왔어요?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내가 보고 싶었어요?"
- 응. 아저씨가 미안하다더라.
"뭘 그런 걸 가지고, 아직은 어색하잖아요."
모두가 살아가는 과정이란 걸 알면서도
가끔은 마음에서 급박하게 그리움으로 못 견딜 때가 있다.
가방을 메고 조수석에 앉은 다빈이가 장미꽃 한 송이를 내민다.
"엄마 가지세요. 학원에서 받은 건데...."
아파트 앞 치킨집에서 치킨 한 마리에, 소스 세 봉지를 시켜
먹고 갈까? 집으로 갈까?
"엄마, 들어갔다 갈 거예요? 너무 늦으면 안 되잖아요. 새벽 미사 가신다면서요."
- 그냥 포장해 달라세요.
저녁에 먹던 반찬 몇 가지를 식탁 위에 늘어 놓았더니,
일일이 맛을 본다. '맛있네요.!"
정말 맛있어서일까? 엄마의 마음을 읽어서일까?
아무려면 어떤가? 멀고도 가까운 거리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되었지.
"잘 자라. 사랑한다. 우리 다빈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내가 말했다.
다빈이의 꽃 장미 한 송이는
반나절 따가운 태양을 받아 검게 오그라들었지만
바라보자니 참 기분이 좋다.
2015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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