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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도 12월을 꿰어낼듯 노련한 삶을 따라하는 나,
길고 지루한 장마 중에도 아직 오지 않은 태풍을 걱정한다.
아직 노인도 아닌데 노인 같다.
폭우에 휩쓸려 내려간 화물차를 구조해 냈다며
운전석에 타고 있던 남자를
70대 남성이라고 표현해 내는 뉴스 자막이 이런 나에게 혼낼 채비를 하고....
밤새 모르고 열어 놓은 창문으로 한바탕 비가 스며들었다.
마룻바닥에 물이 젖으면 썩는다고
호들갑스럽게 마른 걸레를 갖다 대던 그 사람이 생각난다.
상추값이 폭등했다 하고, 시금치 값이 2배로 뛰었다며
뉴스 속의 기자는 호들갑을 떨지만,
세월이 더디감을 한탄하는 아이들과 다르게
빨라도 너무 빨리 달리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나이 든 사람들은
그 익숙함에 대처하는 법 또한 발 빠르다.
미련을 버리고 얼른 포기하는 것,
고기집에 가서 상추나 깻잎은 달라 하지 말 것,
할 수 있다면 집에 있는 상추라도 가져가 볼 것,
그리고 고기만 들입다 먹고 오면 되지....
그저 세상살이의 배려가 체면과 아집을 버금한다.
걸음도 느리고, 생각도 느려졌다.
실수하지 않으려 살피며 걷는 걸음이라 한 템포 느려 보이는 것인지,
체념이 내포된 희망은 세상을 사색하게 만들었다.
지난 밤, 움푹한 접시에 토마토 두 어개를 썰어 두었었다.
조금 있다 먹기로 했던 게으름의 끝은
부글부글 거품이 가득, 토마토는 이미 생명을 다 했다.
한여름의 더위를 무시한 죄.
과감하게 버려냈다.
이렇게 나는 다시 아침을 맞는다.
역시나 같은 듯 다른 아침이지만
버리고 맞이할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역시 괜찮은 사람이다.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메모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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