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팡이를 짚고 황씨가 나타났다.
사무실 앞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었는지
내 차가 주차를 하자 반색을 한다.
"사모님, 오랜만입니다."
- 네.
"제가 부탁할 것이 있어 이렇게 왔습니다.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셈 치고 저 좀 도와 주십시요.
수술한 다리가 저리고, 일도 못하고....
내 잘못도 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얼마간의 돈을 주면 변호사한테 말해서 소송 취하하겠습니다."
- 저도 아저씨 때문에 손해가 막심해요. 원래 산재처리만 해도 제가 할 의무는 없는 거였어요.
여기에 무슨 직원이 필요하다고, 저 혼자 운영하는데.
그래도 직원처럼 서류를 만들어 편의를 봐 준 거잖아요.
그런데 민사소송으로 위자료를 요구하다니요.
법이 판단하는대로 해야 원칙이죠. 저도 법무사 비용도 들고.
아저씨 몸이 안 좋게 된 것 또한 안타깝긴 하지만, 전적으로 제게만 부담을 주면 안 되죠.
"압니다. 부탁할 데가 여기 밖에 없어요."
- 아저씨, 내일까지 전화 드릴께요. 저도 생각을 해 봐야 하니까요.
저 사람은 나 보다 좀 나은듯 하니 무조건 조르면 되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지요.
이 쪽 사정도 왜 어렵지 않겠어요.
"커피 한 잔 마셔도 돼요?"
- 네. 타 드릴께요.
"사모님, 고맙습니다."
우두커니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멋쩍은지
황씨는 커터칼을 달라 해서 지팡이를 다듬었다.
- 아저씨, 이 양말 신으세요.
쇼핑백에 세 켤레의 양말을 담아서 건네주고 나는
컴퓨터의 볼륨을 높여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성가를 들었다.
너나 없이 아픈 삶이다.
괜히 눈물이 나려는 걸 참았다. 마음 약해지면 안 되는데.
- 아저씨, 내일까지 연락 드릴테니 집에 가 계세요.
"지난 번에도 전화 안 주었잖아요. 그럼 꼭 연락 주세요."
-네.
황씨가 갔다.
이 숙제,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마음은 그를 한없이 동정하는 쪽으로 기울고.
지갑에서 2만원 지폐를 꺼냈다.
저만치 멀어져 간 황씨를 큰 소리로 불렀다.
- 아저씨, 잠깐만요. 이 것으로 택시 타고 가세요.
"네. 고맙습니다."
내일 일은 정말 모르겠어도,
지금 내 앞에 보여진 황씨는 안타깝다.
"양말 잘 신을께요."
뒤돌아 언덕길을 오르는데 팔순의 경비 아저씨가
"왜 차를 안 타고 걸어 와요?" 묻는다.
- 아, 네. 잠깐 볼 일 좀 보고 오느라요.
바람결에 날린 눈물이 개운한 아침이다.
2016년 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