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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아침을 서둘렀던 하루는 보너스를 받은 듯 날이 길게 느껴진다.
일곱시 십오분에 다빈을 만나 학교에 내려주고,
모현 그 여관집에 자재를 갖다 주러 나선 길에
나는 들뜬 소풍길에 오른 기분이었다.
언젠가 옛사람이 된 그와 함께 지났을 길 위에서
조안 바에즈의 '도나 도나'를 듣는다.
가면 갈 수록 낯선 길이지만 전혀 두렵지 않고,
알지 못할 정겨움이 감도는 이 순간..... 참 좋다.
사람에게서 거부감이 사그라든다는 건 마음의 바닥을 치고
순수함으로 가득했을 때가 아닐까?
이숙영의 러브 에프엠에서 흘러 나오는 이 노래가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저 자재상에서 왔는데, 지금 계세요."
- 네. 여기 100호로 오세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으려나?
묻지도 않고 도착한 그 곳에서 행여 헛걸음이 된들 아무 상관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빙 둘러 번호가 매겨진 여관집은 허름했지만,
가운데로 마당이 넓은 게 이상하리만큼 편안해 보였다.
둘러보다 숫자 100호 앞 신발장 위에다 부탁한 자재를 올려 놓고
노크를 똑똑 했다. '자재 두고 갑니다.'
부시시 남자가 대답을 크게 하며 문을 연다.
고마운 마음에 자재비에 미리 만원까지 더 입금시킨 남자.
사람에 따라 유난히 친절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먼 길까지 갖다 줄 만큼....
물론 예전에 비해 많이 한가해진 탓도 있지만.
******
봄이면 으레 많은 비를 내려 주는가?
오후 들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릅나무, 구기자 나무 ..... 아직도 심을 것이 더 있다고
짬짬이 밭에 들러 오는 그가 말했다.
이 비로 무럭무럭 잘 자라겠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엔
아, 나도 나이를 먹고 있구나.
도리가 아닌 듯 보이는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함부로 지적질 할 수 없는 것 또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닐까 주춤하는 일.
아, 나도 나이를 먹고 있구나.
이보다 젊은 나이였더라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다 해질까?
생긴 모습대로 사는 것이라는데.....
되도록 상처 받기 위해 조심하는 것 또한 비겁한 짓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 때 그때 잘못 된 것은 일러줘야 한다는데.
감정 표현이 늦어지면 덧대어진 상처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대면하기 점점 힘들어진단다.
엄마와 같지 않은 둘째의 나름 충고에 의하면.
상처받을 것에 대해 두려워 말라는
내심 걱정스런 마음임을 내 모르지 않지만
거칠 것 없이 행할 수 있는 나의 상황을
알 수 없는 스물 셋의 세상은 물론 그렇게 밖에 ....
자신만만한 나이여서 가능한 것들이 참 많다.
그럼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수련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나이 든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면
그것이 딸이어서 가능한 일이라 한다.
2016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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