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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사는 후배 현정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다.
경험도 없이 레스토랑을 경영하다 실패를 하고,
지금은 동네 마트에서 카운터 일을 본지 벌써 5년째라 했다.
"언니 요즘 경기 장난이 아니야? 언니는 괜찮아?"
- 나야 경기 타령에 흔들릴 환경은 아니잖아.
이미 회색빛 어두움에 한 발을 담그고 있으니
좋든 안 좋든 이미 내 소관이 아닌 거지. 더 나빠질 것도 없고....
벌써 10개월이다. 함께 있었다면 경기가 안 좋아서 돈벌이도 시원찮다며
불평 불만으로 얼굴을 붉혔을지 누가 아니?
바깥 세상의 희노애락은 그냥 남의 것인 거야. 이 정도만이라도 어디냐?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람이 없어진 세상은
봄이면 어떻고, 겨울인들 무슨 소용이냐, 늘 한겨울을 품고 사는 것을....
나보다 네 살 아래라 마흔 일곱이 되었을 속 좋은 현정이는 껄껄 웃는다.
사람의 표정은 시시각각 마술을 부리듯
상대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상큼한 오렌지빛이 되었다가,
백설기처럼 흰 색이 되었다가
현정이는 백합 같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냥 절대적이고,
나 또한 그녀에게 무작정 속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아
자존심 따위 소용없는 관계가 이런 모양일까?
명절 끝에 오는 잔 부스러기를 주워 모아
시끌벅적 요란했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나는 이유가 있으니 귀찮은 것이 당연하건만
내 나이의 다른 여자들도 만사가 귀찮다 말하니
이 즈음의 나는 쌤쌤이라 좋았다.
시댁이고, 친정에 다녀와 이유있을 분노로 부어있는 여자들의 부푼 얼굴을 보면서 ....
건너방으로 넘어와 바라보는 내가 되어 있음이...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