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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려면 좀 더 있어야겠지.
8월 말에 씨를 뿌리고 오늘 이만큼인데
지금으로부터 한 달쯤 후면 장대처럼 헐렁이는 연한 이파리,
튼실한 뿌리에 걸맞게 청록색으로 변해 갈 것을 기대한다.
솎아 주어야 한다지만,
나는 아직 그 일에 서툴러서....
모양 안 나는 가지를 한 바구니 따고,
자주 못 오니 온 김에 고추나무도 거두어 내고,
넝쿨 사이로 덜 익은 토마토도,
그리고 푸른 색의 여주 대여섯개까지.
한 고랑 전체를 차지한 보드라운 부추는 칼로 베어서 담아보니 그 또한 한 바구니.
갓도 한 보따리.
두툼하게 가져간 신문지에 둘둘 말아,
내일 만나면 주려고
마리아 것, 알비노 형제님 것을 따로 두었다.
고추, 부추, 갓.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도 좋지만,
자연을 만나러 가는 길 또한 더 없이 설레임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부질없이 되풀이 되는 삶의 여정에서 그만 염증이 느껴졌을까?
그리움으로 채워지는 기쁨엔 분명 한계가 있을 터였다.
말 없이 흘러가는 구름,
졸린 눈을 부릅 뜨며 절대 잠을 청하지 않는 초롱이,
바깥 나들이에 긴장이 섞여 있는듯 했다.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정적 속에서
무궁 무진한 자연의 수확은 실로 경이로운 감동이다.
2015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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