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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날.....나의 글 2015. 2. 26. 17:27
"글쎄 말이야, 은행에 1년 돈을 맡겨 놔도 영 이자가 없다니까,
예전에 이자 좀 더 준다 그래서 저축은행에 잘못 두었다가
예금 보호받을 금액만 받기도 했거든.
그렇다고 현금을 찾아 집에다 숨겨 놓기도 그렇고....
나는 여기 저기 은행에 분산을 해 뒀는데, 그런대로 노후준비를 잘 한 듯해.
돈이 있어야 든든해."
은행에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모르는 분이
딸을 다섯이나 두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며
"우리 교회 어떤 이는 아들이 셋이나 되어도
제 엄마 가지고 있는 월세 보증금까지 욕심 내는 걸 보니까
기가 차대.
나는 혼자 살아도 방이 셋이거든,
어쩌다 자식들 오면 쉬었다 가야 하니....
얼마 전 감기가 들었다길래 우리 집에 며칠 있으라 했는데
자기랑 사는 게 너무 차이가 나니 나를 얼마나 부러워 하든지...
공무원 남편 월급 얼마 돼?
그래도 나는 딸 다섯 다 4대문 안에 있는 대학을 악착같이 보냈거든."
잘났다는 넷째 딸이 대신 은행 일을 봐 주는 날이라서
이렇게 대기하고 있다며,
가만히 있는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내 놓았다.
그래서 위안이란 말인지,
그럼에도 자신은 복 받은 사람이란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확실한 것 하나는
나이들어 쓸쓸해지는 마음은 어떻게 안 된다는 말로 맺음을 하기까지....
내 차례가 되어 은행 직원과 마주 앉자,
들리지 않을만큼의 소리로 짧게 "잘 아는 분이세요?" 묻는다.
느낌으로 많이 잘난체 했던가 보았다. 그동안.
많이 한가한 마음이었다면 맞장구라도 쳐 주었을 테지만
나는 오늘 가지고 있는 통장 여러 개를 텅텅 비우러 온 날이라서
그리 여유롭지가 않았다.
탁자 위에 놓인 경제신문 한 페이지를 넘기는데
노후 5대 키워드가 홀로, 친구, 일, 여행, 텃밭이라고 클로즈업 된 글씨만
열심히 들여다 볼 뿐.
숫자로 나열하자면, 몇 십억인들 함부로 휘갈겨도 그저 자기 마음인 걸.
일생에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은
언제나 단 한번이 될 것이다.
같은 일을 여러 번 반복되이 겪을 일이란
아주 희박할 것이므로.
인생 그리 길지 않음에 한 가지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사는 것은 별로인듯 하다.
다시 없어졌다 해서 씁쓸한 마음은 전혀 아니다.
있다가 없어진 일,
유령처럼 발 끝 없는 존재였다 치면 되는 것이다.
여전히 살아있으므로 기쁨과 즐거움은 본래의 소박함이면 그만이지.
뒤돌아 보면서 속상한 마음일랑 절대 갖지 말기.
영수증 하나로 간단하게 증명된 숫자엔 큰 돈의 액수가 찍혀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는 진짜 쿨하게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기로 한다.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부는 날이라서 그런가? 시원하긴 왜 이리 시원한가!
2015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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