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랩] 제주 2나의 글 2014. 5. 15. 12:21
사방에 아군 보다 적군 밖에 없다는 생각이 ......
가장 가까운 곳에서 걱정을 덜어 준다며 하는 위로가
당나귀에 더해지는 물 적신 솜처럼 가는 걸음을 휘청거리도록 힘들게만 느껴지던 날,
끝없이 펼쳐진 녹색의 제주 바다를 끼고 올레길 7코스 중간 쯤에서 이정표가 멈추었습니다.
그만 돌아가라고.... 이 곳은 위험지역이니.....
그동안 걸어 봤더니, 사고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온통 바위로 둘러싸인 이 곳으로 지나면 지름길이 분명할 터인데
되돌아가려다 잠시 멈춰 섰습니다.
언뜻 올려다 보니 낚시꾼 몇 몇의 뒷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럼 가도 될 곳이었습니다.
무모할 지언정 올레길에 한정된 사람이 아니라, 이 부분에서 나는 다른 목적으로
온 사람이 되기로 합니다.
예전, 무의도 환상의 길에서처럼 걷듯이 그렇게 가 보는 거야!
풀쩍 풀쩍 나비처럼 뛰어 오르기도 하고, 덤벙덤벙 산골 처녀가 되어 보기도 하고,
사람의 긴장된 마음은 오히려 악조건에서 빛을 발합니다.
평평하게 잘 다듬어진 길에선 지루함이 있었다면,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이 바짝 붙습니다.
걸으면서도 정신줄을 놓은 듯
오후 네시의 나른한 오수에 잠시 휘청거리기도 했었는데.....
세게 부딪친 바위 모서리에 등산화 오른쪽 앞 코가 벌렁거리며 벌어졌습니다.
더운 날씨는 사람을 충분히 지치게 합니다.
바로 앞에 바다가 내 손 안에서, 눈 앞에서 오락가락 마음대로 만질 수 있도록 펼쳐져 있습니다.
언제라고 이 광경을 또 만끽할까?
그저 내 맘인 세상, 떠나온 곳은 쉬 갈 수 없어서 미련에 관한 포기 또한 쉽습니다.
평소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았던 습관도 변해 갑니다.
바위 틈새로 곳곳에 우물이 보입니다. 같은 바닷물일 거라 기대도 않은채 찍어서 혀에 대 보았습니다.
찝찌르한 맛이 전혀 없고, 달디 답니다.
한라산에 내린 빗물이 해변가 바위 틈에 숨었다가 솟아오른 물이랍니다.
제주의 현무암 속에서 깨끗하게 걸러진.....
어쩌면 삼다수 보다 좋은 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떨결에 사는 삶이 진짜일지, 예견된 대로 사는 삶이 내 것일지....
누구도 알 수 없었지요. 그대로 되어지는 적이 언제 있었던가요?
가다가 되돌아 갈 길이 지루해, 무심코 질러 온 길이 신비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두려움이요? 이 나이에 잡아갈 사람이라도 있나요? 50 넘은 아줌마를...
아직은 다섯 시 밖에 안 된 시간이라 온통 푸른 색 하늘, 푸른 바다, 하얀 바위 충분합니다.
나는 이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가는 길만 보고 갈 뿐입니다.
바위 무덤을 지나면 무엇이 나올까? 진짜 길의 끝이 보였습니다.
바닷물과 맞닿아 더 이상 진출할 수 없는 길에서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길을 통제하기 전의 흔적 하나, 굵은 밧줄이 두 개 늘어져 있습니다.
더러는 이 길을 탐하는 이들이 있긴 한 것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을 배려입니다.
밧줄 하나가 살 길을 알려 줍니다.
썩은 동아줄이어도 꼭 붙잡고 올라야만, 선택은 알아서 할 일이라는지
묵묵한 밧줄이 어서 오라 손짓합니다.
굵은 밧줄을 잡고,
사실 맘만 잘 다잡으면 밧줄이 없어도 곳곳에
알맞게 발을 디딜 수 있는 돌 계단은 놓여 있었습니다. 위험천만이어서 그렇지.
바로 앞만 보고 가는 길은 덜 무섭습니다.
우리가 너무 먼 훗날의 인생까지 내다 봐서 그렇지, 지금만 보고 살자면....
겁 먹을 삶 또한 없을 듯 합니다.
이 오름길은 마치 지난 겨울 광덕산에서의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사방에 펼쳐진 겨울 산을 내려다 보느라 애쓰고 올랐던 협소했던 정상의 바위.
그 좁은 공간이 얼마나 위태로웠던지.... 오르고 난 후엔 시시해서 곧 웃고 말 지언정
그래서 사람은 모험을 즐기는지도 모릅니다.
그 기억들이 내게 용기를 줍니다.
안에서 머물며 살았던 때와 밖으로 나왔을 때가 사뭇 다른 풍경인 것을 보면 말입니다.
세상은 이론으로 사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쉬운 풍경은 감동이 없습니다.
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해서라면 관광여행을 하면 수월할 테지만
땀으로 범벅이 된 수고로 얻어진 순간들, 그래서 소중합니다.
직접 걸어서 체험한 모든 것들은....
밧줄을 잡고 꾸역꾸역 오르니 이제부턴 별천지,
내려다 보니 아득한 바다일지라도 겁도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수월한 걸음만 남았습니다.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7코스 외돌개 지점은 온통 중국인 관광객들로
왁자하니 시끄럽습니다.
대장금 드라마 촬영지였는지, 배우 이영애의 전면 사진이 있습니다.
다 걸어볼 일이 없는 이들은 이 길이 전부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다 모르는 길을 나는 가슴으로, 눈으로 함께 느낄 수 있었으니 행복합니다.
보기에 좋은 길만 찾아다니며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인 것처럼
암초가 되어 나의 길을 겁나게 가로 막아도
피할 수 없으니 그냥 즐겨야지요.
지나고 보면 다 추억 한 자락, 아무 것도 아닌 세월인 것쯤
이제 알만한 세상살이, 도가 터야지요.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메모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위로..... (0) 2014.05.17 [스크랩] 아침마당에서...... (0) 2014.05.16 [스크랩] 제주에서... (0) 2014.05.15 [스크랩] 그러고 보니 아직 살 날이 많긴 해....... (0) 2014.05.11 [스크랩] 인생길은 장담할 것 하나도 없이..... 살아본 후에나.... (0) 201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