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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상살이나의 글 2014. 2. 19. 09:13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아침 열 시도 안 되어 책자 한 권을 들고 들어섰다.
둘째 아들이 오늘 대학 졸업식 하는 날이라
일찍 일을 마치고 갈 거란다.
"취직은요?"
- 그냥 졸업만 하는 거야. 다들 유학가고, 다시 공부 또 시작하고....
취직이 언제 될지 걱정이야.
졸업이어도 희망은 커녕 다시 한숨으로 가득한 아주머니의 그늘진 얼굴,
"다들 그렇대요. 젊은 아이들 참 가엾어요. 우리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고생에 끝이 어딨나?
아들이 대학 들어갈 때만 해도 1년 동안은 그 희망으로 부풀어 살았던 분이건만....
그 장한 학벌이 휴지조각처럼 변해버린 이 시절,
점점 풀이 죽어 산다.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대부분이 그렇다니.
어려운 시절에 우리가 견디고 있음은 분명하다.
언제 쉬운 시절 있기나 했나?
무사히 지나온 길, 수월하게 느껴질 뿐.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일이라면, 이처럼 죽기 살기로 투쟁하듯 살지 않아도 될 것인데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라니, 예정된 시간 허투루 보내기 싫은
착실한 마음!
그래도 또 가 보는 거다.
내게 남겨진 희망 하나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으며
하다, 하다 안 된대도 그 또한 체념이 아니라, 나의 모자람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덜 속상하지.
우린 적당히 시절과 타협하는 지혜를 갖고 산다.
엄마와 말을 않기로 작정했는지 둘째가 카톡으로
하숙집에 전화해 봐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제 곧 개학이니 재계약도 해야 하고, 등록금도 내야 하고....
다급한 일 투성이라 아쉬운 쪽은 아이들이다.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같은 방 쓸 짝을 좋은 아이로 해 주십사 부탁을 하고,
나 또한 둘째에게 카톡으로 잘 해결했다 답장을 보냈다.
소리 없을 소통이 필요하다면..... 이 또한 예정되어진 나의 이야기 어느 부분.
식탁 위에 놓여진 등록금 고지서!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 그것이 없어져 있기를 바랄테지.
누그러진 마음이 어떤 것이든,
나 또한 어제 아주머니에게서 사 든 우유와 에이스 한 묶음을
냉장고에 넣지 않고 밖에다 두었었다.
다 귀찮았던 마음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늦은 저녁시간을 핑계로, 나는 그대로 누웠다.
화분에 물을 주고, 빨래를 걷고, 부스럭 거리며 비닐봉투를 뜯는 소리까지 언뜻 들린 듯 했었다.
그중 부지런한 둘째가 우유가 상할까 제 자리에 넣는 중일테지.
새벽녘 나는 아이가 씻어 둔 보온물통에 따끈한 물을 가득 담아
일부러 보라고 널어 둔 고지서를 얌전히 챙겼다.
이렇게 마음의 일부가 쌤쌤이 되었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다.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메모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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