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경꾼이 되어....
저녁 밥상을 다 차렸는데,
갑자기 짜파게티가 먹고 싶다는 중학생 막내를 위해 기꺼이
슈퍼에 라면을 사러 가는 아빠,
큰 냄비에다 펄펄 끓인 물에 네 봉지 전부를 풍덩....
물 조절을 잘 못해서 팍팍하게 엉겨 붙은 짜파게티가 되어 버렸지만
맛나게,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도 군침을 삼키는 달디 단 즐거움.
어제 어느 집의 저녁 풍경입니다.
면 종류를 좋아한다는 아빠와 딸의 아기자기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부럽다고 하면 못나 보여서 절대 그런 말을 쓰지 않기로 했으니....
사각 상 주위에 둘러 앉은 네 식구의 소소한 행복,
나는 수시로 염탐꾼이 되어 그들의 맛난 웃음소리로부터
우리의 옛날을 대입시켜 봅니다.
퇴색되어진 테잎은 잘 가려다 끊기고, 다시 이어졌다 끊기기를 여러번,
그만 두어야지요. 잘려 나간 영화의 한 토막이라도 불씨를 당기면
다시 활활 타오를까요! 흥행은 이미 끝났습니다.
환청처럼 내게 자꾸 남이 사는 구경으로 못난 짓 좀 그만하랍니다.
"남들은 이 나이에 살 준비를 다 해 놓아서 여유롭게 사는데,
우린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둘 중 하나라도 아프면 큰일 나.
혼자서라도 유지되어지는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건강한 것도 아니고, 집도 없고, 자멸감만 생기고...."
나와 같은 나이, 남편의 친구 부인은 발버둥 쳐도 되지 않을 땐,
부러움의 모든 대상을 아예 무시해 버리는 쪽으로 굳힌 듯 했습니다.
내게서 쏟아지는 말 보따리를 유일하게 해석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안쓰런 전부를 희석시켜 주기에 충분한 사람이 나여서
안도하기도 하는 사람,
그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나의 적당한 푸념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어도
서로의 위로는 묘하게 공평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있는 것, 웃음은 여전하고, 기죽지 않을 자존심이 있고....
그러면 된 것이지.
"언니의 말만 듣고 내게 충고하려면 고모, 이런 전화 하지 마."
아이 둘은 여전히 치열합니다.
" 사람 하나가 없으니 집안이 이렇게...." 아가씨의 이런 푸념 정말 싫습니다.
물론 내게 한 말이 아니고 아이에게 한 말이지만
아이들이 커 나가다 보면 다들 이런 소란쯤이야 있을 수 있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대 편가르기에 돌입하는,
큰 아이가 그 곳에 가서 울고 짜는 모습은 정말 불편합니다.
다시 작은 아이가 말했습니다.
" 못난 행동 그만 하라고 해. 난 억울해. 그렇지만 언니처럼 나를 위한 변명 같은 건 안해."
정말 딱 부러진 아이의 말이 맞긴 한데, 난 그저 중립을 지킬 뿐...
고모는 결혼을 아직 안 해 모릅니다. 이 또한 편견일테지만.
큰 아이와 지금 함께 있는 아가씨는 엄마가 제대로 관리를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 생각할테지요.
아이가 가방을 쌌던 날,
밖에서 고모가 기다렸다는 걸 알고 나니, 참 이건 아니다 싶었으니까요.
또 하나의 가족으로 연결된, 나와는 정말 불편한 걸 알면서도 감행을 시도한 아이
날더러 아주 간단하게 그 쪽으로 들어와 주면 될거란 아이.
작은 아이는 이해하는 것을 절대 이해하지 않으려는 아이.
할머니와 고모의 코드에 더 익숙한 아이.
동생의 자신만만한 행동이 부럽고 부러우면서도 큰 일이라고
할머니의 묘한 고집을 그대로 닮아있는 아이.
자식이 셋이니 까짓 것 하나쯤 양보하면 그뿐.
그래서 무심코 바라보고 맙니다.
며칠 후 보낸다는 고모와의 나름의 노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냥 언제나 엄마가 빠져 있는 그들끼리의 소란이 조용해 지기만을.....
언제부터 잘못되어진 것인지 할머니, 고모 아이들이 가족이라 굳건히 믿는 믿음.
이걸 깨트리기엔 역부족이 되었으니
불균형이지만 나를 끼워 넣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도 구경꾼입니다.
세상을 그저 구경하면서 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