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십일월 초 하루...
어찌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 같은지.
잠깐 외출을 나와 보니
어림잡아 다섯시 이십 분 쯤에 어둠이 자리잡는 것 같다.
마트에서 콜라비 세 개를 샀었는데 쪼개 보니 속이 온통 썩은 것이어서
겸사겸사 바꾸러 나온 길,
야채 코너에서 다른 것으로, 이번엔 확인해 보고 바꿔가라는 걸
그냥 되었다 했다. 오히려 옆쪽에 쌓여 있는 싱싱한 달랑무가 탐이 났다.
연두색 비닐 봉지에 두 단을 챙겼다.
어제 저녁에 미리 사 둔 것보다 무청의 길이가 한 뼘은 커 보여서
"오늘 것이 더 좋으네요?" 했더니
- 아니예요. 어제 것도 좋았잖아요.
그렇지. 장사 제대로 하려면 그리 말할 줄 알아야 맞는 것이다.
갇힌 공간에 가만히 있을 때는 애써 흩어진 기억을 떠올리고자
속에서 천불이 날 것 같았는데
슬슬 바깥 바람으로 정화되는 나를 발견한다.
자동차고, 사람이고 정체된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 분노만 가득할 뿐
스스로 고통 따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오기 또한 교만이다.
붙잡을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잡고 매달릴 일이다.
흐트러진 감정의 홍수 속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중심 하나는 지니고 있어야겠지.
두둥실 허튼 세월에 떠밀려 아무데고 정착을 해선 안 될 일이니....
한 발, 두 발 실수하지 않기 위한 발걸음은
둘이였을 때보다 혹독하다.
라디오에서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두 곡이 연속으로 흘렀다.
11월 1일, 오늘이 그들이 떠난 날이라 했다.
어째 시월의 마지막 밤 보다, 십일월 초 하루가 더 암울하다.
그럼에도 수 많은 이들의 그리움으로 이름되어질 그들은 참 좋겠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그들의 노래는 명곡이 되어 빛을 더욱더 발할테니...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이 좋아했던 달랑무 김치라도 맛나게 만들어 보자.
나의 그리움은 소박한 김치 하나에.....
이렇게 달랠 수 있는 이유 하나씩 끄집어 내어
아픈 하루 잘 달래며 살아 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