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생각
삶은 밤을 한 입 깨물더니 벌레가 씹혔다고 막내가 줄행랑을 친다.
털어내고 먹어도 좋으련만, 먹거리에 아쉬움이 없는 좋은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
형부가 몇날 며칠 애써 박스 한가득 채워 보내온 귀한 밤일진대
그 이후로 호기심 조차 당기지 않는지 거들떠도 안 본다.
먹을 사람 없으니 나라도 먹어 둬야지.
생각 없이 먹느라고 애를 썼더니, 얼굴도 붓고, 손도 붓고....
밤의 영양가는 예상보다 꽤 높을지도 모른다.
순간 정신을 차린다.
뱃 속을 넘치듯 채우는 미련함이 과했다.
허전하게 다시 비워 두어야지.
친구가 말했다.
"속 몰라 주는 남편 있으나 마나, 오늘도 속리산 갔잖아. 처리할 일은 이리 쭈~욱 미뤄 놓고.
도대체가 책임감은 어디로 갔는지."
주말부부인 동생도 내게 말했다.
"언니, 모처럼 우리 셋이 만났으니까 편해야 하는데 왜 이리 불편하지?
팝송이라도 듣자고 해서 아들한테 부탁을 했지. 아들 왈, 엄마 진짜 팝송 많이 안다니까
남편 하는 말, 아마 팝가수의 계보는 모를 껄 하면서 딴지 거는 심통은 뭐람. 그나 저나 꾸 욱 지금 참고 있는 중."
그들은 오늘 행복한 가정에 대한 성토를 위한 자리를 깔았다.
분석하려 들면 들 수록 적정한 행복의 순위도는 낮게 책정될 뿐인데
그럼에도 어딘가 완벽한 가족의 모델은 있을 거라고 푸념 한번 제대로 던졌다.
다시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자상한 면은 있어. 돈 버는 일엔 젬병이어도
아이들이 늦은 밤 맛난 음식 해 달라면 귀찮아 하지 않고,
나 같으면 그냥 자라고 할 텐데 시장을 봐 와서라도 해 주는 그런 자상함....."
- 그래, 그렇지.
다시 동생도 말했다.
"언니, 다른 부부들도 대부분 이렇겠지? 무엇을 기대하겠어.
그냥 그러려니 성격은 고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래도 아들한테는 위신 세우려고 난리."
- 그래, 그렇지.
그 심리에 관한 한 먹통이 된지 오래인데, 과거형일지라도 그 순간 우린 어땠는지를 끌어내 보란다.
나, 우리?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그렇게 살았던 거지.
아마 지금 있었다면 싫증이 나 지겨울 수도 있었을까?
차라리 다행이다. 좋은 기억으로 있을 수 있어서...
내가 나에게 던진 무척 건설적인 위로다.
어느날 문득 멈춰진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놓은들
시차에 따른 감정은 매번 바뀌는 것,
내 마음이 변했다고 탓하지 마소.
그저 우리에게도 그런 아웅다웅 좋은 시절이 있었던가
도통 생각이 안 날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