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뒷담화
가을이 되면 마음이 지금 같지 않을까 약간 소심해 지려 합니다.
여름 내내 호호 불며 강한 심장 만들어 놓은 일,
계절 바람 빌어 삽시간 쓸어내면 어쩌나,
조심 조심, 가을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 그날 같은데도
매번 같지 않은 것은 밖에서 치고 드는 바람 때문입니다.
어제는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이것도 뒷담화가 될테지만...
내가 있는 사무실에 58세 된 청소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긴히 물어 볼 말이 있는데 괜찮을까?"
- 예, 뭔데요. 말씀하세요.
"나는 분명히 오래 전에 혼자 되었다는 거 누구에게도 말 한 적이 없는데, 어제 어떤 이가
당신, 남편 없는데 왜 있다 그랬느냐고 확인을 하러 왔더라구...... 누가 그랬지?"
- 몹쓸 사람들, 없든 있든 뭘 그런 것을 확인하러 직접 들이대는 경우가 뭐래요?
오랫동안 힘들게 살았겠구나 그리 배려하면 될 것을..... 눈치가 없는 건지, 아주머니 상처 받았겠네요."
하긴 작년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을 때,
그 아주머니가 내가 안 되어 보였던지 슬그머니 다가와 위로를 건넨 적이 있었다.
"내 나이 57세(작년이니까 지금은 58세)지만, 난 스물 아홉에 남편을 떠나 보냈어.
여기서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여긴 직장이니까 사생활 얘기는 안 하고 사는데 같은 입장이 되었으니
내 얘길 하는 거예요. 여기선 남편 있는 척 하고 지내거든요. 무시할까봐.
딸 둘, 아들 하나 다 분가시키고 나 혼자 몸 이렇게 살아가.
그래도 여건이 나보다 낫잖아. 씩씩하게 지금처럼 살면 돼요."
그때 참 고마웠었다.
먼저 겪은 삶의 고뇌를 아주머니의 기준에 맞춰 열심으로 설명하고
눈빛에서 안쓰러운 마음을 보내는 것으로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가?
그런데 문제는 유일하게 그 사생활을 알고 있을 이가 나라는 데 있습니다.
아줌머니의 의구심으로 치자면...... 내가 자신의 남편 없음을 인지시켰을거라는.....
참고로 나는 이 곳에 별로 아는 사람이 없는데 아주머니가 괜히 찔렸나 봅니다.
지금 아주머니는 아파트 셔틀버스 아저씨와 바람이 났다는 소문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남편이 없으니 더 떳떳한 사이 아닌가?
괜히 숨겨 가지고 화근이 될 바엔.... 이런 경우 차라리 거짓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저 오가며 지나는 사람들은 다정하게 말을 주고 받아도
그것을 바람이라 말하는 구태의연한 발상을 가진 이가 여전히 많은 까닭으로
유난히 명랑한 모습이 화근이 될 때가 있습니다.
아주머니 얘기를 한참 듣다 보니 바람이든 다른 것이든
그 아저씨한테 잘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내게 털어놓게 된 격이 되어
속으로 참 많이 웃었습니다.
가슴 속 타오르는 열정의 조각 조각, 이렇게도 표현되는 것 아닐까?
"나에 대한 소문 나도 알지만, 사람이 인지상정(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통의 마음이나 감정) 아닌가,
내게 잘 해 주니까, 나도 잘 하게 되어 있는 것.... 그것이 바람이라면 그렇게 말 하라지."
- 아주머니, 남의 얘기 뭘 그리 신경 쓰세요. 나만 떳떳하면 되지요.
아주머니가 한 시간이나 속 마음을 털어 놓고는 겸연쩍게 다시 일을 하러 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동안 그냥 친한 건 아닌가 봅니다.
저리 많은 변명을 잘 모를 나에게 늘어놓은 걸 보면......
그런데 그 분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