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줄타기
남자친구 등을 비롯해 도시락 챙겨 물놀이를 떠나면서
방안퉁수라고 실컷 염장을 지르고 달아난 둘째 때문에 속이 상한 큰 아이가
하루종일 좌불안석으로 엄마를 반긴다.
들어서자 마자
"엄마,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그만 헤어져야 하나? 그 오빠랑....
걔가 그러는데 날마다 만나지도 못하고, 그럴 바엔 헤어지는 게 낫다고
바쁜 이유가 분명 다른 데 있을지 모르니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나름 연애의 기술 부족을 탓하는데, 엄마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래서 오늘 전화 왔는데도 안 받아 버렸어요. 진짜 내가 바보같아서요."
스물 셋, 엄청 차분하고 소심한 큰 얘가 사색이 되어 하루종일 우울했단다.
사탄의 달콤한 유혹이 여름 한낮, 아이를 흔들어 댔다.
나름 개념을 가지고 처신하는 아이를 일컬어 어리석다 해버렸으니.....
사람 사귀는 방식이 어찌 다 같을 수 있겠느냐고 위로는 해주었지만
나 또한 이럴 때 정말 난감하다.
연애도 인생 공부라는데 공부만 열심히 하랄 수도 없고,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 던져 놓고 줄행랑 치는 둘째 때문에
늘 말썽이다.
54세 노처녀로 늙어가는 고모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우리집 아이들은
절대 고모처럼 되어선 안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라서 그런지
남자친구는 필수로 두어야 안심을 하는 분위기.
"세인아, 둘째가 그러든지 말든지, 네 소신 껏 행동하면 돼. 엄마도 잘 모르겠지만.
사람의 운명이란 게 어디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닐 테고,
내 감정에 최대한 충실하게 응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고, 그 다음까지 생각하지 마."
- 하긴 엄마 연애 제대로 안 해 봤잖아.
아이들은 엄마가 모르는 게 참 많다고 생각을 한다.
둘째의 성격이 워낙 강해서 큰 얘는 늘 치인다.
엄마로써 이 마저도 깨닫는데 최근이었으니 참으로 무심한 엄마이기도 하다.
아이들 성격을 파악하고 나니 처신하는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막내에게 한 번 물어보자. 아직은 순수한 아이이니 정답이 나오지 않을까?"
저녁 늦게 막내가 학원에서 도착했다.
막내이면서, 아들처럼 듬직하게 제 위치를 자랑스러워 하는 아이,
든든한 위로의 말 하나 듣자고, 자신이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 아닌 항변을....
막내를 통해 치유받고 싶은 큰 아이를 위해 무던히도 애 쓰는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
큰 얘가 농심에서 나온 메밀소바를 준비했다.
시장기 가득한 막내가 주방으로 뛰어든다.
명쾌한 해답을 듣기 위한 대접이 융숭하기까지, 이 순간 막내는 제왕이 된다.
막내에게 둘째와 있었던 얘기를 늘어 놓으니,
"간단해요. 뭐 그리 고민을.....
큰 언니 친구는 놀 시간이 없는 것이고, 작은 언니 친구는 놀 시간이 많을 뿐이고.....
그게 무슨 문제가 돼요?"
큰 얘와 나, 그냥 말문을 닫았다.
명쾌했다. 큰 얘가 속시원하게 웃는다.
다들 바보놀음을 하고 있다.
하루 하루 이렇게 살아내는 모습이 연극무대 위의 배우처럼 아슬아슬하지만
무사히 줄타기에서 성공하기를 바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