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스크랩] 역할 1

세수다 2013. 6. 14. 10:50

휴대폰 대리점에 들렀다.

 

이때껏 휴대폰을 살 때마다 차근차근 그 내용을 확인하고 기기 셋팅 할 때까지

어제처럼 오랜 시간 할애한 적이 있었던가?

 

어제는 다르게 특별한 날이었다. 

막내가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이유 불문 제 언니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한 채

꺼이꺼이 밤새 울어대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뱅뱅 돌았다.

자신이 끄적거리며 써 놓은 랩을

빠르게 읊으며 답답한 속내를 토해내던 지난 저녁,

얼마나 답답했을까?  중3의 위치에서 들여다 보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엄마보다 더 완고하게 동생을 다스려 왔던 언니들 때문에

나는 그저 밖에서 돈을 열심히 벌면 되는 것이고,

엄마만이 할 수 있는 그 책임을 막연히 미루어 온 나의 불찰이 그 날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좌로 우로 다시 처음부터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 이유를 대라,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

막내를 향해 다그치는 위로 두 언니들의 다그침이

결국 엄마에게까지  꽂는 비수처럼 정말 악랄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막내는 과연 어떤 생각으로 있었을까?

어쩜 엄마의 비약된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막내를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우스운 비유일지 모르지만....

 

그동안 엄마 역할을 미루어도 괜찮을 줄 알고 지내왔었다.

누군가 대신 해 줄 수도 있는 것인 줄 정말 그랬었다.

엄마 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따뜻한 손길을 애써 미뤄왔던 무심한 엄마 같으니라고....

 

휴대폰 대리점 직원이 카드를 만들어서 세이브를 하면 만원이 할인되니,

카드회사에 전화를 걸어 승인을 하고,.....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가는 시간들은

견디기 힘들다.  설명 들어둬야 할 것은 어찌나 많은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 해 놓으면 퇴근 시간 쯤에 들르겠다 하고 일단 돌아왔다.

 

저녁 퇴근 길, 대리점에 다가갈 즈음 느닷없이 대전 둘째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엄마, 절대 다빈이 휴대폰 해 주지 마. 걘 혼나야 돼.

 잃어버린 즉시 얘기를 했어야지. 뭐가 되려고 그런데. "

- 수련아, 그만 해라. 엄마, 다빈이 휴대폰 이미 샀어.

"뭐라구요? 엄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어제 그 사건이 벌어졌는데 바로 사 주게 되면 걔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돈을 우습게 생각하겠지.  개념이 없어요. 엄마 정신 똑바로 차려요."

 

집안 걱정 무섭게 하는 아이들의 이런 태도가 엄마의 위치를 허무하게 무너뜨리고 있다.

엄마가 대뜸 소리쳤다.

- 수련아, 너희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엄마가 하는대로 가만히 있을 때도 있어야지.

  왜 그리 사사건건 참견이니.  엄마가 그렇게 어설퍼 보여? 

  사람을 혼낼 때도 막무가내로 몰아부치기 보다 따뜻하게 감싸안으면서 해결하기도 해야 하는 거야.

  너희들이 그렇게 난리 쳤으니 엄마는 이해해 주는 마음을 보여 줘야지. 

  그리고 막내가 그렇게 말썽꾼은 아니잖아.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을 확대해석 하지 말아라.

  왜 너희가 엄마의 역할을 가로막고 있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너희는 너희 일이나 제대로 하면 되는 거야.

  휴대폰 대리점에서도 그러더라.  중학생들의 흔한 심리가 어떤 건지 엄마도 알아. 

  너희가 막내와 나이가 가깝다 해서 훨씬 나이 많은 엄마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진 말아.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만으로도 세상을 많이 알고 있다는 걸 잊지 말도록 해.

  나는 다빈이 휴대폰 다시 사 주는 일에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없다.

 

10시 넘어 막내가 학원에서 돌아왔다.

다행히 큰 언니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으니 좋은 기회였다.

"다빈아, 이리 좀 와봐. 엄마랑 얘기 좀 하자. 우리 둘 밖에 없으니...."

아이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처음이었다.

"휴대폰 엄마가 새로 샀어. 내일 가지고 올 거야.  언니들이 사 주면 안 된다고 했지만, 

 산 지 7개월 밖에 안 되어서 위약금도 물었고, 기계값도 추가로 물어야 겠더라.

 언니들이 화를 낸 건 네가 잘못 될까 걱정해서 그런 거야. 엄마랑 약속 하자.

 이제부터 어떤 일이 있건 무조건 엄마한테 먼저 얘기하는 거다. 엄마는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야.

 엄마가 있고, 언니들이 있는데 왜 혼자 해결하려고 했니."

 

아이가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서 한 동안 나오질 않는다.

"다빈이, 우니?  울지 마.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일을 네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커진 것이니..."

한참 후에 나온 막내가 가슴을 치면서 다시 꺼이꺼이 울음을 운다.

만감이 교차하는가 보았다.

가슴이 아프다.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
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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