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12
경찰관이 말했다.
"정 그렇다면 남편분과 함께 가셔서 합의를 보시던지요."
이젠 낯선 단어가 되어버린 그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됐습니다.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에겐 편 들어줄 그 사람이 없는데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말하는
그 경찰관이 나를 무시하지 않는 것 같아 오히려 고마웠다니....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없는데도 없는 줄 모르는 게 감사하다고....
지금은 직원을 두지 않고 일을 하는 바람에
가끔씩 불러 쓰는 직원으로 인해 꼬이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일을 해결하다 보니 언성이 높아지고 이 방법, 저 방법을 궁리하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최선책이 112 경찰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5분도 안 되어 경찰관은 현장에 도착해 주었고,
나는 전화로 그 상황을 전해 듣던 중, 손해가 나더라도
끝까지 가 보고서 결론을 내려던 내 결심이 포기 쪽으로....
씁쓸했다. 악다구니 쓰기엔 내 모습이 너무 처절해 보이기도 하고,
"사모님이 혼자 오시기 어렵다면, 남편분과 함께 오셔서..."
혼자라도 무엇을 못할까? 큰 소리 치며 버텨오긴 했지만
아직 무엇을 따져야 할 그 자리에
혼자 나가 초라해 지는 따위를 연출하기는 더더욱 용납이 안 될 것 같아
다 그만 두자 해 버렸다.
큰 아이가 바깥에서의 일을 연신 물어왔다.
엄마, 어떻게 되었느냐고,
엄마, 어떤 결론이 나와도 괜찮으니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 화가 나면 화풀이라도 해. 참지 말고.
엄마, 미련이 남게 일처리 하면 안돼.
최선을 다 했지만 안 됐으면 이미 엄마의 영역을 벗어난 거니까 괜찮아.
아이의 위로가 엄마의 마음을 날게 했다.
엄마의 걱정을 떨쳐 버리려고 이불 빨래며 옷 정리를 잔뜩 해놓은 아이의 마음 씀씀이에
나는 그깟 손해 정도쯤 잊어버려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데면데면 엄마에게 불만을 표출하며 대들다가도
오늘 같은 날 걱정해 주는 아이가 곁에 있어 위로가 되다니....
엄마의 하루 일정에 대해 그 고단함을 이해하며 속타 하는 마음으로
다른 시름을 덮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