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바람이고, 구름이었으면....
설이 지나고 안방 문이 닫혀 있는 게 못 견디겠었다.
늦은 시간, 학원에서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빼꼼히 열었다 이내 닫는 그 "딸깍" 소리가 너무나 싫었다.
"엄마, 자네?"
차라리 "엄마 나 왔어요? 왜 벌써 잠을 자요?"
그렇게 요란스런 소리로 나를 부추겼으면 좋겠건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스마트폰 확인 하는 일에 더 열중이었다.
큰 얘가 거실 바닥에 전기 장판을 깔고서
제 방에 들어가기 귀찮아 내쳐 이불을 펴고 자는 걸,
그 다음날부터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썰렁할 줄 알았던 거실에 버티고 있으니
하나, 둘 아이들의 움직임이 시선에서 가까이 잡힌다.
마치 많이 늙은 사람 같다.
방을 버리고 밖으로 나오자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천리길, 만리길이 되어 안방이 거실만큼 썰렁해 보이니,
외로움은 그 쓸쓸함의 표현을 이렇게 흩어 놓는다.
앉은 자리가 고향이 되는가.
벌써 며칠째, 한동안 계속 이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상하다.
갑갑하게 사방이 막혀 있는 막다름이 지겹도록 싫어졌다.
훌훌 바람이 되어, 구름이 되어 날 수 있다면
딱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좋은 일이 생기길
이제 더이상 원치 않는 삶으로 되었다면 그들은 믿어줄까?
그 좋은 일 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마녀의 심술을....
그랬다. 반드시 그렇게 됨을 믿으면서 두려워졌다.
그래서 별나게 좋은 일은 말고
그냥 별 일 없이 살게만 해 달라고 감히 호소한다.
누구라도 이런 마음일까?
긴 즐거움도, 긴 슬픔도 숨차지 않게만 누릴 수 있었으면....
자꾸 익숙해져 간다.
꼭 둘이었어야 한다고 믿었던 삶에서
밋밋해 돌아버릴 지경이어도
던져진 돌멩이처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결국 내 삶은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던 거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오래 전 어느날 우연히 본 사주까페 주인장의 헐거운 사주에서
"당신의 운은 이제 다 되었네요. 지금부터는 당신 아내의 사주가 승승장구 할 거예요."
그때 나는 웃었고, 남편은 돌팔이라고 안 좋은 얼굴을 했었다.
결국 그 사주가 맞았던 걸까?
이제 와서 그 말의 뜻을 내 상황에 맞추어 보는 꼴이라니...
그러면서 나를 인정하는 게 편하다면 그리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