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표범!
지키는 주인 없어도
한 달에 육만 육천원짜리 CCtv 조수는 사람보다 낫다.
오늘처럼 냉장고 속 같은 날씨엔
철문 뒤 손잡이에 걸린 열쇠줄이 경기 일으킬듯 차가와도
이른 아침 아쉬운 발길을 섭섭잖게 하는 댓가로
나보다 먼저 문을 열어 놓곤 한다.
꼭꼭 닫아 건 인심을 풀고,
알아서 계산을 하고 어쩌다 더 두고 가는 사람은 조용해도,
덜 두고 가는 이는 며칠 내에 그 차액을 다시 얹어 놓고 가기까지....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장치 때문일까?
이깟 것 속여서 뭐 할라고가 맞을게야. 치사하게.
문명은 좋은 것이다. 편리함을 깨닫고 나면.
바람이 들고 나게 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종일토록 바깥에서만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보다 단절되어진 느낌이 싫어서이기도 하고.
가구배달 보다는 쇼파배달이 차라리 나은 것 같다는
화물기사의 잠시 일탈은 별 것 아니었나 보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 걸 보면.
"쉬운 일 어디 있나요? 다 그래요."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받아 12그램짜리 맥심 커피 하나를 털어 내어
후루룩 마신 후,
- 1톤 화물차에 뒷문 따고 쇼파 여덟개를 실을 수 있거든요.
그것만 싣고 지방 갔다 오려면 남는 게 없어, 그래서 쌓고 쌓으니 사고도 나고....
쇼파 카바 좀 싸게 주시요.
"공짜로 드릴 순 없으니, 아주 조금만 이익 보고 드릴께요."
- 네, 알겠습니다.
이처럼 서로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면 살 만한 세상은 충분하다.
누군가 토로하는 짠한 일상의 푸념을 들으며
그럭저럭한 하루는 무한 감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너 나 없이 애 쓰고 사는 우리들....
샤워기가 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영상을 찍어서 보낸 둘째,
"이럴 때 아빠가 있었으면 잘 손 봐 줬을텐데..."
있다 해도 대전까지 당장에 달려 갈 순 없는 일이건만,
불현듯 간절한 아쉬움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부지런하고, 손재주가 있었던 사람.
근처 철물점에 연락을 해서 고치라 하니 출장비 포함 2만2천원!
아저씨 왈, 중국산이면 싼데, 국산이라 2천원 깎으면 안 된다는 것을...
억지로 깎아서 2만원으로 해결했단다.
"수련아, 너무 깎지 말아라. 그게 남는 걸거야."
늦은 저녁 엄마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 가사를 읊조리고 있을 때,
수련의 카톡 배경 화면엔 이런 글이 놓여 있었다.
'아빠는 말씀하셨다. 너무 작은 것들까지 사랑하진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가 모두 널 울게 할 테니까.
나는 나쁜 아이였나 보다.
난 아빠가 그렇게 말씀 하셨음에도
나는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망고 구피를 사랑했고,
비오는 날 무작정 날 따라왔던 하얀 강아지를 사랑했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내 여름 샌들을 사랑했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긴 머리 인형을 사랑했었고,
내 머리를 쓱쓱 문질러 대던 아빠의 커다란 손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구피가 죽었을 때,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샌들이 낡아 버려야 했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 때마다 난 울어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2015년 1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