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의 <소림명월도>
檀園 金弘道 <疏林明月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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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소림명월도> 종이에 수묵담채, 26.7x31.6cm, 호암미술관 소장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는 정조 시대에 활약한 불세출의 조선 화가다. 그의 솜씨는 산수, 인물, 화조, 속화, 기록화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주물렀다. 그림으로는 <군선도>와 <송호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누가 붙인 제목인지, 참 그럴 듯하다. '소림명월疎林明月'이라… 풀이하자면 '성긴 숲에 걸린 밝은 달'이란 뜻이다.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숲에서 달 뜨는 걸 본 사람은 안다. 그 허황하면서도 소연한 분위기를 말이다. 그 느낌은 분명 빽빽한 숲에서 보는 달과 다르다. 무대 장치가 바뀌면 같은 연극도 감흥이 다른 것처럼.
옛 사람들은 빽빽한 것보다는 성긴 것에서 풍기는 정취를 옹호한다. 워낙 헐벗은 민족이라서 그랬을까. 이를테면 성긴 오동잎에 떨어지는 비 소리를 즐기고, 듬성한 대나무 밭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 홀리는 작품들이 많다. '희미한 달빛 아래 미인 보기'도 그 정황을 떠올려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저밀도의 정서'와 통한다. 그것은 뭐랄까, 모자라서 아쉽고 채워지지 않아 서운한 느낌에 가깝다. 성취 뒤에 올 허탈을 경계하고자 하는 여백의 지혜도 혹 들어있을지 모르겠다. '성김의 이미지'가 대저 그러한 것이다.
단원이 그린 '소림명월도'는 저밀도의 감흥, 즉 성긴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명품이다. 게다가 이 그림은 나무와 달만이 등장하는 완벽한 2인 극이다. 사람을 등장인물로 쓰지 않은 이 그림극은 소박하면서도 쓸쓸한 정서를 기막히게 우려내고 있다. 나뭇잎은 죄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그냥 내버려둔 채 가꾼 흔적이라곤 전혀 없는 잡목들…, 이런 가난한 숲에도 달은 뜨는가. 아니, 가난하기에 그나마 달빛은 은총이다. 허리춤에 걸린 달마저 없다면 나무의 일생은 얼마나 고단할까.
단원이 평생 그린 작품들 중에서 이 그림만큼 애상을 자아내는 것은 없다. 아마 곤고한 시절을 보낸 마음의 풍경이 담긴 게 아닐까 한다. 단원은 이런 시를 남겼다.
문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들 도리어 누가 되고 부귀가 하늘에 닿아도 수고에 그칠 뿐 산 속으로 찾아오는 고요한 밤 향 사르고 앉아 솔바람 듣기만 하리오.
그는 늘 탈속의 꿈을 지녔던 화가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은 단지 쓸쓸함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무위한 삶의 한 토막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 글쓴이 손철주 (학고재 주간, 미술평론가) (1954년생, 저서《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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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월광소나타>와 <소림명월도>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Sonata No.14 in C sharp minor Op.27 No.2 Moonlight
3월 5일(음력 1월 15일)은 대보름날입니다. 김홍도의 <소림명월도>에 관한 손철주 님의 글을 보다가 작년에 읽은 책이 생각났습니다. 유명한 광고인 박웅현 씨가 펴낸 책 <책은 도끼다>에 나오는 대목인데, <소림명월도>에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붙여서 보고 들으면 기가 막힌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어느날 베토벤의 <월광 1악장> 을 듣고 있는데 이 그림이 떠오르는 겁니다. 그래서 그림과 음악을 붙여 영상을 만들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서를 격하고 시간도 격한 다른 두 삶이 달에 대해 느꼈던 자기의 감정을, 한 사람은 음으로 한 사람은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마치 쌍둥이 같이 닮아 있는 겁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월광소나타>를 들으면 그야말로 소름이 돋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지금 베토벤의 <월광>을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123쪽)
대보름날 <월광>을 크게 틀어놓고 달구경을 해 봐야겠습니다. 예보를 보니 날씨가 맑아서 전국각지 어디서나 달구경이 가능하다고 하며, 서울지방 달 뜨는 시간은 오후 6시 9분이랍니다.
여기 소개한 <책은 도끼다>(북하우스, 348쪽)는 2011년 발간되자마자 대뜸 스테디 베스트셀러에 진입했고 독자들과 만나는 인문학강독회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책을 잘 읽는 방법, 좋은책 소개 등 유익한 내용이 많고, 특히 감성을 다듬고 제대로 사유하는 법을 깨우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책은 도끼다>라는 특이한 제목은 카프카의 <변신>의 한 구절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도끼였다. 나의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 도끼 자국들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어찌 잊겠는가?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쩌렁쩌렁 울리던, 그 얼음이 깨지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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