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흙에서 왔으니.... 다시 흙으로....."

세수다 2015. 2. 21. 14:49

북적 북적 모인 사람들이 많은 집은 좋겠다?

설 명절이라니, 

곧 지나갈 한 철 메뚜기 같이......

잠깐씩 만나, 한바탕 웃고, 아쉬운 한 마디 인사로 이어지는 작별.

친척은 그런 것이다.

 

길고 길게 즐거움은 유지되지 않아서 오히려 낫기도 해.

그럼에도 여전히 무사한 안부, 다행스런 날들로 행복하기를.

 

덕분에 이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거미줄처럼 어지러웠던 수많은 관계들이 이토록 간결해졌는가?

삼일 내내 잘못 걸린 전화 조차 내게 없는 걸 보니.

누구에겐가 잊혀져 간다고 서러워 할 것도 없다.

그럭저럭 세월 보내는 일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가볍게 끄덕이며 들먹이기 싫은 나이,

어느 때부터 금기어가 되었다 했던가?

육십이 넘어가면서 손가락으로 세고 싶지 않아졌다고도 했다.

나도 곧 그리 되겠지.  

먹는 줄 모르게 먹어진 나이,

한 순간에 불과할 뿐인 세상 일은

오래도록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해서 빛을 발하지 않는다.

퇴색되어진 기억 속으로 하나, 둘씩 소멸되어 가는 것.

 

고픈 배 쥐어 짜며 악착같이 살아서도 안 되고,

게으름 잔뜩 피우며 살아서도 안 되고,

해진 언저리 어정쩡한 지점에서 어슬렁 어슬렁 살 일이다. 

정해진 간격 사이로 날 선 아픔 들먹인들, 무슨 소용이라고.

웃을 일 있으면 실컷 웃고, 훌훌 털어내고 나면

솜털처럼 가벼워진 빈 몸뚱이는 비로소 새 것이 되리라.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뒤늦게 성지가지를 태우다가

결코 잊기 어려운 나의 1년에 목이 메였다.

아프니까 청춘이라 했던 그 젊었을 때를 능가하며

철저히 들여다 보았던 시간들.

혼자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안타까움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다시 살 길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면서

고립되어진 마음으로부터 기꺼이 반가운 마음으로 되살아나는 일.

흔쾌히 열린 마음끼리는 언제라도 가능한 것이다.

 

더 부릴 욕심도 없지만,  나의 시작은 감사로부터 비롯된 것들이었다.

듣기로 하였다면 여전히 열린 귀는

사방으로 몹쓸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시간이 모자랐을 터인데

존재의 이유를 내 머무는 곳에서만 가능한 것을 깨닫기까지엔

차단시켜 둔 소리 덕분이 적지 않았다.

 

뒷걸음질 치는 애태움일랑 흘려 보내자.

앞으로 가는 걸음만 생각했다면,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삶인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