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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엄마! 오늘 참 멋지다..... 거기까진 참 좋았는데.

세수다 2014. 9. 15. 14:51

그 날도 아침부터 조카 결혼식이 있는 다섯시까지 혼자서 쉼없는 마라톤을 뛰고 있었다.

생각은 벌써 저 만큼 앞서 갔는데,  더딘 몸은 반도 못 따라 간채 엉금엉금 기었지만....

 

미용실에 들러 머리 손질은 빠른 시간 앞에 물 건너 갔고,

핸드백과 구두는 마련되어 있어서 거기에 맞추려면 원피스가 딱이라고

진작부터 둘째가 알맞은 코디를 당부해 두었던 터라

임박한 시간, 촉박하게  집 근처 옷 가게에 들렀다.

옷감의 질이야 문제될 것이 아니고,

지금 내 상황에선 디자인만 대충 보고 걸쳐 입어야 할 옷 하나 얻어 들면 되는 것이다.

역시! 가을은 분위기 있는 계절이라서 그런지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들은

왠만한 것들은 다 걸쳐도 좋을만치 탐나는 것 투성이였다. 

 

나의 머리는 꽤 단순한 편이어서 둘째가 일러 둔

다른 것을 둘러 볼 시간적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원피스가 어디 있는지만을 직원에게 자꾸 물었다.  

 

몸에 딱 달라 붙는 검정색과 진회색의 원피스를 한 번 입어 보라는 것을

살짝 걸쳐 보다가 그만 두었다. 

멋은 둘째 치고 불편한 것은 딱 질색이 되어버린 긴 습관을 어쩔 수 없게 되어

"이 옷 말고, 걸칠 수 있는 편안한 수트 같은 거 없나요?"

 

감청색의 헐렁한, 아주 무난한 수트 하나를 단 시간에 걸쳐 본 이후,

그냥 싸 달라고 했던 나는,  역시나 허둥지둥은 예외 없이.

 

옷가게 직원이 내게 의례적인 말을 한 마디 건넸다.

"일주일 안에 교환은 되지만, 환불은 안 됩니다."

- 예. 알았어요.

그리고 난 속으로 맘에 들지 안 들지는 집에 가서 아이들한테 선을 보이고

혹시나 바꿔야 할지도 모르니 상표는 절대 떼지 말고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왜 하고 있었는지, 그렇게 자신이 없나?

 

큰 아이가 원피스를 사지 왜 그랬냐고 약간 못 마땅해 했지만,

금새 안에다 받쳐 입을 자신의 얇은 원피스나, 바지 등을 꺼내어 흩어 놓았다.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대전의 둘째에게 코디를 부탁하면서.....

 

아이들은 언제나 엄마가 어설퍼 보인다?

밖에서의 나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감청색 윗도리에  적당한 아이보리색 면 바지 하나를 줄을 세워 다려야 겠다며

아이가 다림질을 시작했다.

 

"세인아, 스카프는 안 해도 될까?"

- 하지 마세요. 엄마는 너풀너풀 어지럽게 치장하는 것보다 심플한 것이 어울려요.

"하긴 그래."

 

머리 정수리에 불쑥불쑥 올라온 새치를 감추느라 짧은 시간 내 염색을 하고,

다시 아이는 고데기로 나름의 머리 손질을 서둘러 주었다.

 

처음엔 갸우뚱, 좀더 멋진 옷을 사지 그랬나?

그 눈빛은 어느새 반전이 되어, "엄마! 오늘 참 멋지다!"

 

옷이나, 다른 무엇이 되었든지,

그냥 바라보는 것과 그 사람의 것으로 탈바꿈 되었을 때에야

제대로 빛을 발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각자의 근성이나, 생활 습관이 쉬 바뀔 수 없는 것처럼

본연의 나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지만

누구에 의한, 누구로 인함 보다

원래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비로소 되짚어 보는 시간은

이런 나들이가 아니라면 택도 없을 일이지.

 

위에서 부터 발 아래까지 쭈욱 훑어낸 다음

만족스런 눈빛을 보낸 이후에 아이는 공부한다며 제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속으로만 '함께 가면 참 좋을텐데....'

 

혼자 가는 일이 언제라고 아니었나? 

북적대던 나름의 참 좋은 시절이라고 여겼던 날들은

다시 다른 모습으로 재현되어질지는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담담하게 흘러가는 지금이 나에겐 그런대로 괜찮기도 하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엄마, 오늘 참 멋지다!"라고 말한 큰 아이의 기분 좋은 감탄사만으로

눈물나게 좋은 날이었는데,

 

꽉 막힌 토요일 오후 경부고속도로에서 순식간, 쾅!

옆 좌석의 가방이 우루루 앞으로 쏟아졌다.  사고였다.

내 뒤에서 오던 차가 들이받는 바람에 앞 차까지 와장창.....

중간에 꽉 끼인 나는, 교통사고라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남의 일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한참을 있었다.

앞 차의 남자는 부지런히 스마트폰을 들이대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뒷 차의 남자가 먼저 걱정이 되었다.

이도 오지랍인가?

 

정체된 도로를 쉽게도 뚫고, 렉카차는 순식간에 도착을 했다.

잠시잠깐, 파악을 끝낸  렉카차 기사들이 뒷 차의 운전자가 100% 과실을 인정했다며

급하면 차를 하나 줄테니 먼저 가도 된단다. 

녹음기에 저장되어 있는 멘트, 숙달된 톤으로 능숙하기 이를데 없이

그들은 먹잇감 하나 낚은 듯 속전속결이었다.

 

내 잘못이 아닌 것 하나 다행,

사람 다치지 않은 것 하나가 또 다행.....

늦었지만 서울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어서 또 다행.

차 종이 달라서 순간 당황스럽긴 했어도 

숙달된 삶은 또 거기에 맞추어 너울너울 춤을 추듯이 하루를 견디어 내고.....

 

삶이란,  숭고한 것인지,  고된 것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성찰의 힘으로 버티는 인내를 가르쳐 준다.

 

뒤늦은 결혼식장에서 언니 하나가

"너 토끼띠지?  올해까지 삼재래.  조심해야 돼."

받아들이지 않을 삶이라면 그도 두려움일테지만,

내게 들이댄 어떤 것이든 아주 특별한 변고일 턱도 없고,

그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한 부분을 확대해석하는

어리석음이 내겐 다행히 없다. 

 

더 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감사를 수도 없이 되뇌이는 지혜 쯤이야

반복된 삶의 훈련일 뿐이다.

 

교통 사고 후유증이란 것이 진짜 있긴 있는가?

아직 병원엘 가지 않았는데, 허리가 뻐근한 것이....

보험회사에서 몇 사람이 번갈아 병원 다녀왔는지 안부를 물었다.

"별 일이야 있겠어요?"  내가 그리 말하자

- 그렇길 바래야지요.  보험회사 직원이 그렇게 받았다.

 

이렇게 저렇게 복잡한 세상살이로 끝없는 고통의 연속일지라도

살아있는 이 곳이 참 좋은 곳이란다.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하고 잘 살아 봐야지.

 

 

 

 

 

 

 

 

출처 : 짧은사랑 ♡ 긴 이별
글쓴이 : 김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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